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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Oct 11. 2023

도마뱀, 15

열세 겹

  아들이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것을 넘어서 고통이 있다면 그것조차 감사했을 딸 슬아가 태어난 지 육 년 삼 개월 만의 일이었다.


  처음부터 둘 이상을 바랐던 나와 달리 첫 출산을 경험한 바로 그 날, 아내는 외동을 선언했다. 딸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아내는 끊임없이 그 날을 복기하며 내 팔뚝이며 옆구리를 꼬집었다.





  자기 몸 찢어 낳은 것 아니라고, 냉큼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순산이 어쩌구....... 에휴, 말을 말아야지. 내가 당신한테 무슨 눈치를 기대를 하니.





  나 정도면 제법 눈치 있는 편 아닌가, 라는 말을 목구멍 너머로 얼마나 꾹꾹 눌러 삼키는지를 알면 아내가 제 반려도마뱀이 그래도 영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내가 내가 눈치가 없다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눈치가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되고-.......


  그렇게 아내의 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며 비실비실 웃어 넘기는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내가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배웅하고 돌아와는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 임신했어.





  내 눈 두 쪽이 느리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도르륵, 도르륵, 도르르르르........ 등줄기를 타고서 흐르는 식은땀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신중해야 한다. 보통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올바른 답은 과연 무엇인가. 답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시냅스가 반응하기 위해 거칠게 번뜩이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의식이 순식간에 저 멀리, 아득해진다.





-





  너무 늦지 않게 둘째 가져야지 않겠니, 늬들 나이도 있는데.





  어머니 말씀에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었다. 아내와 둘째는 없다 대화를 마친 상태였지만, 어른 말씀에 굳이 반박을 해서 갈등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는 체를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대번에 내 허벅지를 쥐고 비틀었다. 예상했기에 나는 그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감내하려 했으나 그 순간 아내와 어머니의 눈이 마주쳤고 어머니의 안색이 대번에 굳어졌다.





  너희, 둘째 안 낳을 생각이니?

  아니 엄마, 그게.......

  네 어머니, 저희는 슬아 하나만 잘 기르기로 했어요. 슬아 돌보는 것도 벅차서 둘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저 복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출산이다 육아다 휴직 내는 것도 어렵구요. 그러니까 저희는 슬아 외동으로 끝낼게요.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우두두 쏟아지는 아내의 말에 어머니도 나도 그만 아연히 굳어 버렸다. 그래도 내 어머니이신데 굳이 저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서운함이 밀려와 한 마디를 하려던 때 어머니가 나보다 한 발 먼저 아내를 타박했다.





  얘, 너 공무원이잖니. 육아휴직 좀 쓰는 게 어때서? 다 쓰라고 있는 건데. 그리구 여자들 다 그래. 그러려고 공무원 하는 것 아니니?





  이번에는 아내의 웃는 낯이 굳어진다. 두 개의 거대한 돌장승 사이 나는 바람만 불어도 깎여 나갈 하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저 공무원 아니고 회사원이에요, 어머니. 공공기관 다닌다고 공무원은 아니죠. 그리고 아이 낳으려고 공무원이 된다뇨, 그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말씀이 지나치세요. 저 그러려고 죽어라고 공부해서 대학 나오고 취직한 것 아녜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얘 좀 봐, 시에미가 제 맘에 안 맞는 소리 좀 했다고 세모 눈을 뜨고 따박따박, 어머, 어머! 너 회사에서도 그러고 다니니?

  아니요, 회사에서는 안 그러죠. 회사에서는 저보고 애 낳으려고 취직했다고 하는 사람 아직 없으니까요!





  늘 소리가 없던 아내였다. 웃음소리조차 함빡 입모양으로만 웃던 조용한 아내가 빽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대로 아내의 얼굴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얀 어머니보다는 빨간 아내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내 몸은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아니, 아내를 말려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어머니가 틀린 말을 하신 것이 시작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 해서 시어머니께 윽박을 지르는 아내의 태도는 잘못이 없다 말할 수 있는가?


  머릿속에 지나치게 많은 생각이 흘러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눕듯이 앉아있던 몸을 세워 일으켰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여보.





  내 부름에 팩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이 그렁그렁하다. 입으로 뱉은 악은 십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는 듯 그 눈 속에 분이 가득히 서려 있었다.


  아내가 내게 이런 눈을 한 것은 처음이지만 나는 이 눈을 분명 알고 있었다. 이미 과거가 되어 희뿌옇게 변해버린 그녀, 내가 잃어버린 반쪽, 전 연인 소연의 머리칼이 환영으로 눈앞에 휘날린다. 아내는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아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낯선 뒷모습이 되어 눈에 일렁인다. 그 순간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소금 껍데기가 툭, 찢어진다.





  어머니,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저 아이 낳게 하려고 이 사람이랑 결혼한 거 아닙니다.





  바싹 마른 입이 의식되었지만 그런 감각 따위는 무시하고 냉큼 아내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나를 바라보는 눈에 당혹스러움과 원망의 눈물이 담긴다. 오랜만에 바로 마주보는 어머니의 눈가에 모르던 주름이 보인다.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지지 않고 뒤에서 들리는 아내의 씨근덕거리는 숨소리에 점점 흐느낌이 묻어난다. 의도치 않게 어머니와 기싸움이라도 하듯 눈을 맞추고 있는데 슬그머니 뒤에서 내 허리춤을 잡는 아내의 손이 느껴진다. 나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저희 오늘은 가 볼게요. 제가 먼저 적당한 때에 연락드릴 테니 아내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뒤춤을 잡는 아내의 손을 마주잡고 당겨 아내를 일으켰다. 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있는 딸아이를 안고 나오니 아내가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주둥이를 한껏 벌린 기저귀 가방을 들고 훌쩍이며 현관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나를 등지고서 앉아 있다. 뒷모습이 자잘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으나 나는 그 등을 향해 걷지 않았다.


  아내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들고 등을 밀어 집을 나서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는 아내의 등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어머니가 말이 너무 심했지. 앞으로는 그렇게 못 하시게 단도리 잘 할게.





  아내는 소리없이 웃듯 소리없이 흐느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퍽 그녀다웠기에 나는 나의 떨어진 심장을 주워 제 자리에 얹어두고 조용히 아내를 끌어안았다. 어머니께는 아내 몰래 그 날 저녁 전화를 드렸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체 하며 별다른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도 내게 아까의 사건은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밥은 먹었느냐며 물었다. 그 후로 슬아가 다섯 살을 꽉 채워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갈 때까지,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암묵적으로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





  내가 그때 내 몸을 붙잡고 있다고 느낀, 표피를 덮고 있던 소금덩어리는 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인식한 내 탈피껍데기였다. 그 껍데기가 그 순간 터져 주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인생의 반을 잃는 경험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어머니의 떨리는 등을 떠올리며 착잡하면서도 후회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같은 경험을 해도 좋다는 뜻은 전혀 아니므로 아내의 임신 선언에 나는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결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의 어떤 것이지 않은가. 소설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쉿, 그 이름을 언급해서는 안 돼, 나는 둘째를 그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여튼 이렇게 대답이 늦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것은 무조건이므로 나는 일단 어떤 단어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뱉었다.





  괜찮아?

  그건 무슨 말이야?





  뾰족하게 날선 듯한 아내의 말에 나는 이것도 답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답은 없었고, 나는 다만 긴 설명 중 가장 짧은 것을 골라내어 아내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의무가 있다.





  당신이 걱정되어서. 나는 둘 가지고 싶어 했지만 당신은 아기 가졌을 때나 낳을 때 너무 고생했잖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구....... 좋은데, 너무 좋은데 혹시 당신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괜찮으냐구.





  이번 말은 제법 정답에 가까웠던지 아내의 표정이 풀어진다. 아내의 표정이 어딘가 멋쩍고 무안하여 나는 무언가 생각하는 체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왜 생각하는 체였냐 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저 아내를 안아주는 것이 맞았기 때문에 어깨를 당겨 품자 아내도 순순히 안겨들었다. 이번 것도 정답이었다.





  어쩌겠어, 잘 키워 봐야지.

  나도 최선을 다 할게.

  어휴, 말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덜그덕덜그덕 돌아가는 듯 하다. 그것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잠시 힘을 주었지만 품 속에서 중얼중얼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아내의 조그마한 머리통을 보며 그냥 짧게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고, 나보다 훨씬 육아도 살림도 직장생활도 잘 하는 사람이었으며, 좀체 틀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이번에도 아내의 말이 옳을 것이다. 결혼 후 아내의 말대로 했을 때 내게 나쁜 일이 있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적어도 내 기억 안에서는). 특히 딸아이 슬아를 내 품에 안겨준 것이 그러하니, 이번에도 역시 무엇이든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길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리를 끝마친 사고회로를 조용히 접어 무의식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둘째 승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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