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왜 이래, 정말? 유치하게.
아침부터 뜬금없이 아내의 가시가 내 등을 쿡 찔렀다. 도마뱀의 배우자가 고슴도치라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먹히지도 않는 아침밥을 아내의 성의를 보아 꾸역꾸역 위장에 밀어 넣고 도무지 깨지 않는 뇌를 뒤적이며 가족을 먹일 사냥감을 구하기 위해 직장으로 나설 채비를 하는 내게 유치하다는 아내에게, 나는 껍질 속으로는 울컥했으나 겉으로는 잠잠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유치하게 굴고 있던 탓이다. 울컥했던 것도 오히려 제 발을 저린 것에 가깝겠지.
승호랑 계속, 계속 이러고 지낼 거야?
아내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분이 아닌 염려였으나 그 말을 받은 내 마음은 도리어 비뚜름해졌다. 아내의 말이 나를 탓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어른답게 굴지 못하고 아들 녀석을 냉랭하게 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은 그 녀석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응당 녀석이 내게 먼저 다가와 아버지 잘못했어요, 하고 사과를 해야 다음 단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내는 마치 내가 먼저 아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듯했다.
승호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 당신 눈치 보느라 애 밥도 못 먹고 학교 다니잖아. 무슨 아빠가 돼서 아들을 이렇게 해?
이렇게 하는 게 뭔데.
꼬투리 잡지 마. 당신 하고 있는 짓,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
그러지 말구, 저녁에 일찍 와서 승호한테 밥 먹자고 해요, 응? 내가 저녁 맛있는 것 차려 놓을게. 당신 좋아하는 들기름 나물도 무쳐 놓을게.
적당한 외투를 골라 내밀며 나를 어르는 아내의 말에 나는 대답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내는 내 답을 알겠다는 듯 흥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등을 다독이는 그 손길에 나는 기묘하게도 마음이 녹는 것을 느꼈다. 잘못은 아들이 하고 달래는 것은 아내가 하는 이상한 상황인데도 꽁한 마음이 물에 잉크 풀어지듯 슬슬 풀어져 흩어진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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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먹이 사냥 끝에 집을 찾아 돌아왔을 때, 현관문에서부터 향긋고소한 들기름 향이 풍겨 기분이 좋아졌다. 슬픔은 수용성이라고 한다. 슬픔을 눈물로 흘려보내거나 땀을 흘리면 섞여서 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샤워 한 번에 풀리기도 하는 것이 우울과 슬픔이니, 제법 그럴싸한 말이다.
나는 혹시 분노는 지용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들기름을 섞어 내니 분노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왔어요?
답지 않게 들뜬 발걸음으로 들어서는 나를 맞이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밝지 않다. 적당히 대답하며 기대했던 식탁을 보는데 아무것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분명 음식 냄새는 온 집안에 가득한데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는 끓고 있지 않았다. 동물의 감이 반응했다.
무슨 일 있어?
내 질문에 아내의 하얀 얼굴이 삽시간에 눈물로 물든다. 여보, 승호가 친구랑 글쎄....... 불안정한 목소리에 나는 왈각 찌그러지는 안면 근육을 느끼며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내팽개쳤다. 입을 벌리면 잇새로 당장이라도 세상 온갖 욕이 쏟아져 나올 것이므로 턱에 힘을 가득 주어 악물고, 들으라는 듯이 발을 쿵쿵 구르며 아들 녀석의 방으로 향했다. 어떻게 이렇게나 나를 배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그마한 아들 녀석을 처음 품에 안았던 날부터 첫 이가 나던 날, 첫걸음마를 하던 날, 방긋방긋 웃던 그 작은 얼굴들이 주마등마냥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네가, 그토록 나를 기쁘게 하던 네가 감히 나를 어떻게!
장승호!
크게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노크도 없이 최대한 온 힘을 다해 열어젖힌 그 문 안에는 아들이 침대에서 이불을 돌돌 말아 몸을 숨긴 채 누워 있었다. 기가 찬다. 고작 저런 천조각으로 제 몸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나는 거칠게 그 이불을 잡아당겨 걷었다. 그리고 굳었다.
아들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광대에는 커다랗고 퍼런 멍이, 입술에는 허연 각질들과 피딱지가, 온 얼굴에는 눈물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내가 알던 아들의 머리카락, 이마, 눈, 코, 입, 나를 닮아 약간 짧은 턱에 아내를 닮아 넓적한 귓불까지 틀림없이 내 아들 승호가 맞는데, 너무나도 낯선 상처가 나를 마주하니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 버렸다. 세상이 멈춘 듯하다.
너, 너....... 너, 누가... 누가 이랬어. 누가 때렸어!
허겁지겁 두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감쌌다. 누가 내 아들을! 누가 이랬어! 머릿속에 담긴 생각이 없으니 멍청하게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알을 깨고 나온 이후 내 삶에서 이렇게 멍청한 순간이 있었던가.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석은 없었다.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정신없이 몸을 살폈다. 목에도 긁힌 듯한 상처가 있다. 가슴속에 물이 고였다. 조금 걸쳐 있던 이불을 치워내고 아들의 옷을 들춰 몸을 확인했다. 이리저리 제 몸을 쥐고 뒤흔드는 내 손을 아들은 말도 없이 견뎠다.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는 것이 꼭 제 어미를 닮아 내 마음의 샘이 점점 깊어진다.
세상에, 누가 내 아들을, 누가 감히 내 아들을!
아빠.......
아빠. 오랜만에 듣는 아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아이 같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조목조목 쥐고 뜯어본 아들이 여전히 나의 작은 아기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누가 감히 이런 몹쓸 짓을 한 것인가. 이렇게 작고 소중한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던 것인가. 아으, 아으!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마음의 샘이 터진다. 내 눈을 타고 샘물이 흐른다. 견디지 못하고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어으, 우리 아들! 아아! 아이의 자그마한 뒤통수를 끌어안는 내 손에 뜨끈한 온기가 차오른다.
슬픔은 수용성이다. 나는 아들과 마주 안고 통곡했다. 아들은 나를 아빠라 불렀다. 나는 이 아이의 아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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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가 잘못했다고 얘기는 했어?
아내는 꼭 이런 이야기를 가장 바쁜 아침 출근 준비 시간에 꺼낸다.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대답을 요하는 질문을 던질 때, 나는 최대한 현명해져야 한다. 내 눈알이 빙그르르 돈다.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아나, 가족끼리.
헹 코웃음을 치는 나를 보고 아내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