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이 춥다는 말은 가히 참말이었다.
쫄쫄 굶어가며 40분 정도 지연된 수술시간을 기다리다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내려갔다.
도우미분이 이불을 곱게 접어 같이 태우시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수술실에 들어가고 보니 과연 이불이 없이는 안될 정도의 한기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수술대에 올라 천장에 동그란 조명을 쳐다보고 누웠다.
온갖 회의와 후회가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그냥 약 먹고 치료받을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있나.
그런 생각들.
쇄골과 겨드랑이에 마취 주사가 따가웠다.
손의 감각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끼며, 익숙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팔에는 무지막지하게 빨간약이 벅벅 발라졌다.
몇 번의 내시경 경험상, 프로포폴로 잠들면 순식간에 기절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번엔 아주 느리게 서서히 아득해졌다.
이러다 마취가 다 안된 채로 수술하면 어떡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또 했더랬다.
다행히도 ‘환자분 이제 마취 다 넣을게요’ 하는 말에 ‘네’ 하고 대답하고는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뭔가 팔에 칭칭 감기는 느낌이 들며 몸이 흔들렸는데, 나는 다 완료되면 짠 하고 깨워줄 줄 알았던 터라 ‘어 나 너무 일찍 깬 거 아닌가 ‘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저 깼어요.. 했더니 이제 일어나면 된단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또 깨서는 ’ 저 자꾸 깨요..‘ 하고 웅얼거렸다.
다행히도 통증 없이 수술이 끝났고 차가운 수술방을 벗어나 병실로 올라왔다.
보호자가 없다고 하니 주치의 선생님이 병실까지 따라오셔서 물을 떠다 주시고 주변정리를 해주셨다.
의사 선생님이 손수, 직접 물을 떠다 주시다니. 내 인생 가장 감동적인 의료서비스였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렇게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첫날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 것은 수술한 팔도, 링거가 꽂힌 손목도 아니고 바로 소변이었다.
수술이 끝날 무렵 정신이 들 때쯤부터 소변을 보고 싶은 감각이 몰려왔는데, 힘을 줘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변기에 앉았는데 아무리 힘줘도 나오지 않을 때(실제로 싸면 이불에 지도를 그릴테니) 그 느낌을 현실로 겪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변이 마려운데 막상 앉으면 쪼르륵 이거나 아주 힘을 줘야 겨우 주룩 나오곤 했고, 방금 화장실에서 나왔는데도 또 급하게 마려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방광염에 걸렸던 기억이 있어, 마치 통증 없는 방광염에 걸린 기분이었다.
어차피 화장실에 가 앉아도 소변은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적어도 한 시간은 참았다가 싸야겠다고 생각했다.
깁스에 링거에 양팔이 자유롭지 않은데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화장실을 가야 했고, 그나마 누워있는 와중에도 계속 소변 마려운 느낌이 들었으니 첫날밤이 얼마나 새우잠이었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예전의 나라면, 이런 현실이 너무 서럽고 슬퍼서 혼자 울며 잠들고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겠지.
하지만 나는 보호자 없이 혼자 수술대에 오를 정도로 어른이 됐다.
잠이 안 오면 그냥 안 오는 대로, 몽롱하니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내 일을 시작하고 나니 잠자리에 누워 앞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이 즐거웠다.
수술 당일, 잠 못 드는 그 밤에도 나는 굳이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익히느라 애쓰지 말고, 잘하는 부분을 더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도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잔잔한 목소리와 함께 한 번 잠들고, 내 꿈을 그리다 또 한번 잠들고 그렇게 몇 번의 쪽잠을 자고 일어나, 둘째 날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