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면 효도하는 거
둘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아기였다.
기도하며 기다리고, 기대하며 준비했던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는 갑작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걱정인 사람들이었으니 피임을 한 적이 없었다.
난임이 고민이었지 임신이 고민이 아니었다.
그래서 둘째가 그렇게 빨리 생길 줄 남편도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첫째 키우느라 육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둘째까지 임신해서 몸이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시어머니가 밑반찬이며 첫째 돌봄이며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태어난 아이 돌보며 뱃속의 아이 커가는 것이 감당하기에 벅찼다.
버티느라 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어찌어찌 견디다 보니 첫째 돌잔치 할 때가 금방 다가왔다.
날짜를 정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예복을 맞추고,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 한숨 돌릴 때쯤 갑작스러운 하혈이 시작되었다.
변기가 가득 차도록 피를 쏟은 것이다.
둘째 출산일이 두 달이나 남아있었기에 겁이 났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급히 갔더니 아기가 나오고 있다며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담당 의사가 아기가 들어갈 인큐베이터 빈자리 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여러 군데 대형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몇 번의 시도 끝에 자리가 있는 곳이 닿았고 구급차를 타고 가서 입원할 수 있었다.
출산을 저지하는 약물을 투여받으며 고위험 산모 입원실에 드러누워 있었지만 겨우 하루 정도 버티고 결국 둘째는 태어나고 말았다.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하기 전에 써야 하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수두룩하게 빽빽한 동의서에 사인하고 온 남편의 얼굴이 겁에 질려 백지장처럼 새하얬다.
둘째를 막 출산한 나보다 남편이 더 쓰러질 것처럼 상태가 나빠 보였다.
첫째 좀 생기게 해달라고 소망했던 우리 부부는 이번에는 둘째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했다.
출산하고 일반병실로 옮겨진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첫째 돌잔치를 취소하기 위해서 전화하는 것이었다.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는 예약해 놓은 식당, 예복, 산후조리원에 공손히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돌잔치도 하지 못하게 된 첫째는 둘째 퇴원할 때까지 시댁에 맡겨졌다.
친정엄마는 퇴원하면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받으라고 했지만, 아기가 없으니 들어가기가 싫었다.
아기 낳은 엄마들이 아기와 함께 있는 곳에 나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밤낮 없이 걱정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만일 둘째가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첫째는 남편에게 주고 둘째랑 둘만 아무도 안 보이는 산골 깊은 곳에 들어가서 살아야지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참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모자랐구나 싶다.
장애가 있는 아이일수록 대도시에 시설 잘된 곳에서 돌봐야지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도망쳐서 숨어 살려고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직장이 병원 근처인 남편이 출근 전에 내가 모유 짜낸 거 병원에 맡기고, 점심시간에 면회 가고, 퇴근 후에 집에 와서는 아기 잘 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캥거루케어 하는 날만 가서 안고 있었다.
얼른 건강해져서 집에 가자고, 집에 가서 형아랑 재미있게 놀고 아빠랑 맛있는 거 많이 먹자고 속삭였다.
그럼 둘째가 더 빨리 건강해질 것만 같았다.
할 말이 없을 때는 알고 있는 노래들을 불러줬다.
의사가 두 달 일찍 태어났는데 별다른 이상 없이 잘 먹고 잘 자라서 한 달 만에 퇴원하는 케이스는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집에 가서 잘 키우시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둘째 키우는 내내 너는 건강하면 효도하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루 종이 첫째와 입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저녁 뉴스 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어버이날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친정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을 계좌로 보냈다.
시부모님은 지난 주말에 직접 뵙고 식사하고 용돈을 드렸다.
저녁 먹고 학원을 간 나의 연년생 아들 둘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까?
초등학교 때는 카드든 꽃이든 학교에서 만들어온 종이 쪼가리라도 주더니, 중학교 가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동네친구엄마 카톡을 보니 그 집도 마찬가지다.
나만 못 받은 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어버이날 아는 척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다.
건강하면 효도하는 거라고 하지 말고 어버이날이라도 챙겨야 효도하는 거라고 말해야 했나?
사춘기 애들한테 바라면 욕심이라지만 어린이날은 챙겨줬는데 싶어서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