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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떠나 본다

3. 민박집에서 똥을 밟았다.

-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by 슈크림빵

추위도, 불편함도,, 피곤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6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이 굳어 버린 몸은 말한다. '눈곱 떼었으면 속히 이동 부탁드립니다.'

공항-시내로 이어지는 공항철도는 인당 4파운드, 1파운드가 2000원을 넘었으니 대략 8000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알고 맞는 매는 더 아프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미 습득한 정보였음에도 맞닥뜨린 상황은 유쾌하지 않았다. 여기에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쇄골 아래로 수염을 늘어뜨린 늙수그레한 직원의 불량스러운 태도까지 더해져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6파운드와 바꾼 티켓 네 장을 신경질적으로 던지면서도 내내 당당한 그에게 만국 공동 제스처인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대신 할머니들이나 할 법한 찰진 욕을 쏟아냈다.


목적지는 ald gate East역이었다. 피카델리 라인(진한 군청색)을 타고 열여섯 번째인 South Kensington에서 내려 디스트릭트라인(초록색)으로 갈아타고 여섯 정거장을 지나니 목적지였다. 그리고 도착한 역 밖의 모습은 영화에서 본 적 있는 장면과 같았다. metro를 건네는 사람과 이를 받아 챙기는 사람, 그리고 이와는 상관없다는 듯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들.. 좁은 도로 위로 갈길 바쁜 사람들과 육중한 끌낭의 바퀴 소리까지 더해졌다. 채 8시가 안 된 상황, 늘상 보았던 출근 시간의 익숙한 모습은 낯선 땅에 선 이방인의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졌다. 민박집에서 정해준 미팅 포인트인 HSBC은행에 도착해,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둘러본 시선에 주유소가 들어왔다. 주유소 한편에 위치한 매점 안으로 들어가니 점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아랍인이었다. '안녕하세요'는 아랍어로 뭘까? 상념에 빠진 나를 그의 목소리가 구했다.


그: hello!!

나: can i use that machine?(밖의 공중전화 부스를 가리키며 1파운드 동전을 내밀었다.)

그: yes.

나: thank you very much!!

그: have a good day!!


네가 건넨 1파운드 동전을 20펜스 5개로 바꾼 후, 그는 동전 하나를 집고 밖의 공중전화 부스를 가리켰다. 20펜스 하나만 넣으라는 얘기겠지,, 영국에 와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다. 런던의 공중전화 부스는 죄다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외관에 적잖이 실망한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뛰쳐나왔다. 화생방 훈련도 이보다 나으리라. 바닥 곳곳을 점령한 흥건한 침까지,, 이곳이 정녕 신사의 나라 영국이 맞는가? 간단명료하게 통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그제야 참았던 숨을 쉬었다.

부스스한 얼굴에 질끈 동여 묶은 머리, 대충 걸친 추리닝 차림의 여자가 모국어로 인사를 건넸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땅을 밟으신 고모는 말씀하셨다. '미국에서의 삶은 공항으로 픽업 나온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양계장을 운영하시던 분이었다 했다. 그로 인해 고모는 돈을 만지던 손에 닭을 잡았다고 하셨다. 은행원이란 커리어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닭 목을 치는 노동자의 신분으로 리셋되었다. 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그리고 막연했으나 불길했던 육감은 틀리지 않았다.


제법 규모가 큰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빙- 돌아 민박집에 도착했다. 삐그덕 거리는 좁은 계단을 올라 만난 비좁은 방의 구조,, 영화 <노팅힐>을 통해 이미 접한 영국의 가옥 구조와, 두 눈에 아로새겨진 모습 사이에는 분명 괴리감이 있었다. 좁다란 방에는 무려 네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대학 졸업반이자 휴학생이기도 한 동갑내기 친구라 소개한 그녀들로 인해 내부는 한층 비좁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에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그들에게 짤막한 소개를 마치고 서둘러 짐을 풀기 시작했다. 벽을 따라 ㄱ자 모양으로 침대는 놓여 있었고, 먼저 자리를 잡은 그녀들로 인해 자칫하면 그들의 발과 우리의 머리가 맞닿을 형국이었다. 발냄새보다는 머리 냄새가 낫기에, 베개 위치부터 잡았다. 만약 침대를 지탱하는 철제 프레임이 없었다면, 아니 몸을 사부작거린다면,, 속눈썹 개수까지 파악될 정도로 침대의 한쪽 면은 붙어 있었다. 마치 샴쌍둥이처럼 말이다. 기껏해야 2박, 피곤하면 잠은 절로 온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다잡고 지하 주방으로 내려갔다.


아침으로 시리얼과 빵, 우유, 계란이, 저녁으로 라면이 공짜였다. 고기반찬은 아니지만 조식과 석식이 제공된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있어 매력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 아무렴 식비보다 교통비가 비쌀까!! 시내의 호스텔 대신 거리가 있는 민박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구미가 당긴 또 하나는 1박 16파운드인 숙박비가 기간 한정 13파운드라는 것이었다. 자그마치 1박에 12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 솔직히 1박 16파운드라 해도 저렴한 축에 속했지만 숙소 컨디션, 리셉션 스태프들의 태도 등을 고려한다면 13파운드가 적당할까?? 그래 맞다. 이것저것 따질 요량이면 적어도 시내 샤보이호텔에 묵으면서 했어야지. 지금 내 꼴이란 자판기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에스프레소 전문점의 퀄리티를 따져 묻는 격이니, 꼴 같지도 않은 처사라지만,, 그럼에도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하 주방으로 내려가니 아빠와 오빠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피곤과 추위로 인해 뜨거운 국물이 절실했기에, 오늘을 위해 미리 챙겨 온 봉지라면과 햇반으로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행히도 가스레인지 사용의 제한은 없었다. 막 한 젓가락 넘겼을까? 불행의 시작, 그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나: 좀 드실래요?(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더라. 라면도 넉넉했다.)

그: 괜찮아요.(내 얼굴에 제 시선을 꽂았다.)

나: 저희가 좀 시끄럽죠. 공항에서 노숙했거든요.(시끄러웠나? 미안함이 있었다.)

그: 아니에요.(빤히 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나: 아. 네. 그럼 다행이고요. (그렇다면 그 시선 좀 거둬 줄래. 불편하게 왜 계속 보는 건데?)

그: 가족이신가 봐요?(아빠, 엄마, 오빠를 차례로 훑었다.)

나: 네.(그럼 가족이지. 커플로 보이니?)


아!! 여기서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학생이냐? 누구처럼 집 팔고 여행 왔느냐? 직업은 뭐냐? 등등..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그의 질문 아니 취조로 인해,, 우리는 가족 맞고, 한국의 집은 무사하고, 돌아가면 백수 신세라고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민박집 주인은 따로 있어요. 리셉션 직원은 유학 온 학생이라 그런지 어쩌다 투숙객들과 마찰이 있기도 하지만 어릴 뿐 아니라 학생이기도 하니 조금 답답하다 한들, 같은 동포끼리 이해해야죠. 안 그래요? 그리고 테이블 끝 쪽에 웅크리고 있는 저 학생은 감기로 고생 중이에요. 어제까지 런던에는 비바람이 엄청났거든. 날씨 복이 있으시네."


참지 못한 나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가 다급히 외쳤다.


"국물에 밥 말아서 먹어야죠?"

"다이어트 중이라 면만 먹어요."


적어도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나의 의중을 알았으리라. 설거지와 뒷정리는 오빠에게 부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 숙소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혹 그가 사장은 아닐까? 연식이 좀 되어 보이는 그의 외모가 솟은 의심에 부채질을 해댔다. 그렇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설령 사장이라 해도 여성 전용 도미토리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테지. 그럼에도 한달음에 도착한 숙소의 방문을 꼭 처닫았다.


타워 브리지는 숙소에서 20분 거리라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타워 브리지는커녕 탬즈강의 물줄기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마냥 걸을 수도 없었고, 계속 걷다 보니 불길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해서 앞치마를 동여 맨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스스로가 현지인임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의심치 않았다.

"too far."

리셉션 직원은 걸어갈 만하다 했고,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는 걷기엔 너무 멀다 했다. ald gate East

와 Tovwer Hill은 1정거장 거리였다. 물론, 튜브 노선도에 의한 것이었지만,, ald gate East로 되돌아가 튜브를 타는 것도 내키지 않았거니와, 이미 걸어온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에 다시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탬즈강이, 타워 브리지가 머지않았을 거란 희망을 머릿속에 새긴 채 걷기를 얼마, 대로변에 붙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에 줄지어 선 음식점들, 그리고 한 손에 맥주, 그리고 다른 손에 담배 혹은 샌드위치를 들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타워 브리지 대신 그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앞서 나간 마음은 무단 횡단을 종용했고, 거부할 수 없는 힘에 굴복당한 듯 도로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때마침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행하던 오토바이의 손잡이가 내 배를 긁고 지나갔다. 해석은 불가능했지만 그가 뱉은 말들은 분명 욕이었다. 속도를 유지한 채로 그는 사라졌고, 홀로 현장에 남은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였다. 조금 전까지 나란 존재는 안중에도 없던 골목 안의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있었다. 놀라 달려오신 엄마는 다짜고짜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 아팠냐고? 창피함이 먼저라 그런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에게 얻어맞은 등짝이 더 얼얼할 뿐, 두둑한 뱃살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걸었다.


모든 일에 끝은 있는 법, 한참을 걸었더니 저 멀리 타워 브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깡충깡충 뛰는 날 보며 오빠는 조금 전 접촉 사고를 운운하며 한소리를 보탰지만, 그 정도에 반응할 짬은 아니었다. 런던탑의 외벽을 따라 걷기를 얼마, 마침내 거방진 타워 브리지를 대면함은 물론, 때마침 출몰한 증기선으로 인해 도개교의 개폐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만 같아 더없이 기뻤다. 잿빛 도시일 거란 나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리쪼이는 쨍한 볕으로 인해 눈은 절로 꿈벅였고, 피부는 따가웠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물론, 강 건너의 테이트 모던과 런던 아이, 목을 반 자쯤 빼면 저 멀리 빅벤까지도 보일 듯했다. 쨍하다 못해 지글지글 끓고 있는 5월 9일의 런던이었다. 해님 구경이 귀한 곳이라서일까? 맨살을 드러내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나와는 달리 아빠의 관심사는 템즈강이 아닌 물의 색깔이었다.


"이 따위 흙탕물이 뭐가 대수라고, 비행기를 타고 와서까지 저리 호들갑을 떠는지. 경포대에 오면 아주 기절을 하겠네." 콧방귀를 뀌는 아빠에게,,

"흙탕물의 정도를 부러 보러 오는 겁니다." 되레 맞대응을 했다.


강을 따라 걷기를 얼마, 밀레니엄 브리지가 보였다. 2006년 6월에 완공된 길이 370M의 영국 최초의 보행자 전용 다리인 밀레니엄 브리지는 세인트폴 대성당과 테이트모던을 연결하고 있었다. '빛의 칼날'(Blade of Light)이라는 콘셉트로 새천년을 기념해 세워진 다리는, 개통식 당일 예기치 않은 교량의 진동으로 인해 한때 '흔들리는 다리'(Wobbly Bridge)로 불리기도 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을 등지고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면 모습을 드러내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 Museum)은 2000년 5월 12일 개관한 현대미술관으로 이 또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 공급을 위해 세워졌던 화력 발전소인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리모델링해서일까? 여느 미술관과는 다소 다른 외관이었고, 무료입장이 가능해서인지 아니면 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7층으로 이뤄진 건물 내부를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국의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앤디 워홀의 강렬한 색감이 시선을 잡아 끄는 '마릴린 먼로'를 감상한 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테이트 모던을 뒤로하고 밀레니엄 브리지 위를 걷다 보니 조그맣던 세이트폴 대성당은 어느새 커져 종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의 한편에 놓인 <CITY OF LONDON> 로고가 박힌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거리 예술가의 공연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귀국 후의 내 모습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보이지 않는 힘은 일순간에 나를 제압했다. 그런 내가 보기 안타까웠던 걸까? 거리의 악사가 베푼 따듯한 위로 덕에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금 나를 에워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동화된 나는 현실로의 도피라던 너의 일침도, 돈지랄이라던 너의 삐죽거림도, 역마살이 돋았다는 너의 비아냥까지도,, 아닌 척은 했지만 꾸역꾸역 챙겨 온 마음속의 짐을 몽땅 털어내기로 했다. '너희들의 부러워한 만큼 아니 그 보다 훨씬 알차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새기고 갈게.'


뉘엿뉘엿 저녁노을이 내려앉고 있었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 저거, 이게 웬 횡재니!!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terravison 버스였다. 다음 여정은 니스, 이동 수단은 저가 항공인 이지젯이었기에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가야 했고, 이동 방법의 제1은 편도 15파운드의 45분이 소요되는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를 타는 것, 제2는 Baker street에서 편도 10파운드의 1시간 15분이 소요되는 이지젯 셔틀버스를 타는 것,, 그러나 이 모두는 만만치 않은 비용으로 인해 일단 제쳐둔 상태였다. 정작 하고자 한 제3은, 편도 8파운드의 1시간이 소요되는 terravison 버스였다. 1과 2에 관해 꽤 많은 정보가 있던 반면, 3은 깜깜했다. 해서 민박집과 현지인의 도움을 받고자 했는데, 민박집의 스태프는 고개를 갸웃했고, 같은 방의 학생들은 저가 항공 아닌 유로스타를 이용한다 했다. 적잖이 골머리를 앓던 찰나, 예상치도 못한 버스를 발견한 것이었다.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콜럼버스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그러나 앞서 나간 마음과 발짓은 아빠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의해 저지당했다. 아빠의 손가락은 신호등의 빨간불을 가리키고 있었다. 혹 버스가 떠날까 싶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한달음에 달려 기사님께 버스 시간표를 얻음과 동시에 양어깨는 절로 승천했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제야 휙 둘러본 시선에 새겨진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름 아닌 LIverpool Street였다.


지하 식당 안은 얼큰한 라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혹 수다맨일까 싶어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처음 본 남자였다.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이역만리 타국에서 안성탕면의 참맛을 알게 될 줄이야!! 해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다음 사람을 위해 식탁 위는 물론 냄비까지 정리한 후 방으로 돌아왔더니, 룸메이트가 귀가해 있었다. 옥스퍼드에 다녀왔다며 채 가시지 않은 상기된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녀들이 쏟아내는 글자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두 귀를 쫑긋하고 집중했다. 한참을 종알거린 후 허기가 졌는지 저녁을 먹으러 간다 했다. 퇴실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기억에 있지만 다시 입실하는 모습은 없었다. 절로 감긴 눈꺼풀을 따라 영국에서의 두 번째 밤도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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