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6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지만, 반쯤 감긴 두 눈과는 달리 정신은 안정권이었다. 갖은 노력에도 번번이 실패했던 새나라의 어린이 되는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리도 쉬울 줄이야.. 반면에 눈동자가 또렷한 걸 보니 엄마는 애진작에 기상하신 듯했다. 1층 샤워실은 남녀 공용인 듯했고, 사용자가 워낙 많기도 해서 3층의 욕실로 향했다. 수압이 약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산골짜기 약수터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수압도 수압이지만 배수시설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리고 불편했던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 맞은편 벽 쪽으로 변기 하나 달랑 놓인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엊저녁 귀갓길에 2층으로 향했다간 바지에 지릴 것 같아 급히 이곳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했다. 문을 열고 닫는데 0.1초는 걸렸을까? 수압이며, 배수, 거기에 환기까지,, 무엇하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심히 불편했다. 물론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알면서도 간과했던 부주의함에 따른 결과라지만, 나도 이런데 부모님은 어떠셨을까? 말씀 안 하시는 그 속내에 고마움보다 죄송스러움이 먼저였다.
주방으로 향하는 걸음 하나하나에 긴장이 묻어 있었고, 심장은 멋대로 뛰고 있었다. 민박집 최대 포식자인 수다맨의 레이더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식당 끝, 게다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최대한 상체를 구부리고 말없이 입 운동에 집중을 했다. 사발에 남은 눅진 시리얼을 단번에 털어놓고, 오빠의 정성이 담긴 토스트를 손에 쥐고 2층 숙소로 향해 한 입 베어 무는 찰나, 방문이 열렸다. 룸메이트였다. 다행이었다.
"죄송해요."
방에서 취식을 금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었으나, 멀쩡한 식당을 두고 좁은 방에서 취식 중인 내 잘못이 더 크지, 굳이 따지려 들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는지 고개까지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와 같았다. 어젯밤, 방으로 돌아온 그녀들은 이미 잠든 우리 모녀로 인해 조심 또 조심을 했건만, 그럼에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했다. 결국, 곤한 잠을 방해했다는 것에 대한 사과였는데, 정작 내 기억은 달랐기에, 그녀들이 잘못 본 거라 생각했다. 가만, 자신의 잠버릇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안 해도 될 상상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어쨌거나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기에, 급한 마음에 대충 반달눈을 만들었고 이에 그녀들 역시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강을 따라 걷자' 첫 여행을 통해 얻은 귀한 교훈이었다. 떼레베 강을 따라 걸으니 천사의 성과 바티칸 시국이, 센 강을 따라가니 루브르 박물관, 퐁네프 다리, 노트르담 성당을 만났다. 그런 이유로 템즈강을 따라 걸었다. 그러기를 얼마, 공중에 붕 떠있는 커다란 캡슐 안에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런던 아이였다. '공기는 어떠한지, 돈은 아깝지 않은지, 경치는 맘에 드는지' 묻고 또 물었지만, 연이은 나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거대한 투명 캡슐 안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워털루 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1815년 나폴레옹을 선봉에 세운 프랑스 군은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과의 전투가 한창이었고, 결국 나폴레옹은 몰락한다. 이를 '워털루 전투'라 배운 바 있다. 그러나 워털루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으로 연합군이 작전 본부를 설치한 곳이었을 뿐, 실제 전투지는 몽생장과 플랑스누아라는 마을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몽생장은 포격당했고, 우고몽과 파플로트 그리고 플랑스누아는 불에 탔고, 라 에생트는 점령당했다.'
그러나 실제 격전지였던 이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사실상 전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워털루가 모든 명예를 갖고 있었다. 이는 역사가 워털루를 기록한 것이고, 나의 기억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이 아니었다면 워털루 역은 건너뛰었겠지. 1848년 개통된 지하철 역으로 ST. Pancras 역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유로스타의 탑승지였을 뿐만 아니라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역답게 내부는 웅장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를 다투어 찍어대는 잔뜩 웅크린 카메라들을 찾아보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외쳤다. '혹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도와줘요 제이슨 본!!'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역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궁금증 하나가 솟구쳤다. 2007년 11월까지 유로스타의 탑승지는 워털루 역이어서, 그 이름만으로도 프랑스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을 텐데, ST. Pancras 역으로 바뀐 탓에 앓던 이가 빠진 듯 그들은 개운했을까??
스코틀랜드의 민족음악이자 군악대의 악기로 알려진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눈에 들어왔다. 악사는 킬트라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기에 그를 본 순간 눈과 혀가 이미 아는 익숙한 스카치 캔디 생각이 앞서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악사와 악기가 혼연일체가 되어 토해낸 구슬픈 선율이 귓속 깊숙이 파고 들어왔고, 단번에 웃음기를 지웠다. 이는 낮의 빛을 흠뻑 빨아들여 한껏 빛나고 있는 빅벤과는 분명, 다른 그림이었다. 두 눈에 아로새겨진 웅장한 빅벤 그리고 커다란 시계탑은 그 잠깐의 상념조차 허락지 않았다. 영화 <점퍼>의 주인공은 저 시계탑에 몸을 걸친 채, 비 오는 밤의 런던을 감상하고 있었다. 언제 뿌릴지 모를 비에 대비해 우산을 쥔 채로 말이다. 매체뿐 아니라 나의 기억회로 속에서도 런던은 늘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기억과 상상은 마주한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송골송골 맺힌 목의 땀방울, 벌겋게 달아오른 두 뺨까지, 그럼에도 찌푸린 표정 대신 환한 미소를 머금은 한낮의 빅벤 앞,, 한데 모여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런던의 교통비를 감안한다면 무조건 시내에 머물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빅벤,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검 궁, 세인트 제임스 파크, 내셔널 갤러리, 트라팔라 광장, 피카델리 서커스까지,, 근거리에 오밀조밀한 형국이라 도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구획 정리를 똑똑히 하면 되는 셈이었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에 올라 사랑의 맹세를 하기'.. 여행을 계획하며 누구나 wish list를 작성한다. 런던 하면 단연 뮤지컬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피카델리 서커스와 코벤트 가든을 거점으로 맘마미아,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등등,, 커다란 입간판을 내걸고 성황리에 영업 중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꿈의 현실로 이뤄지는 마법의 공간,, 이들이 가진 강력한 힘이었다.
No. 10 Downing Street 굳게 닫힌 철문 앞엔 유독 여성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응집한 그들은 영화 속의 수상을, 아니면 현실의 수상을 기대하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순간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 수상의 유무에 대해 물었고, 철통 경비 중인 경찰관이 공석임을 알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데 모인 군중들은 삽시간에 흩어졌고, 이에 절로 웃음이 났다.
낯선 곳에서 맥도널드 간판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한시름 놓게 된다. 그건 아마도 브랜드가 가진 막강한 힘이며, 한때나마 발을 담갔었던 이력 때문이리라.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여행 중 맥도널드를 만나면 으레 발도장을 찍곤 했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을 모르진 않으나 분명, 나라마다 혹은 도시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다. 트라팔라 광장으로 향하던 중, 맥도널드 간판을 보고 홀린 듯 들어갔다. 매장 분위기는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가격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고 게다가 서비스는 최악이었다. 얼음 한 스쿱에 마치 세상을 다 준 듯 호들갑을 떠는 그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럴 거면 매니저 유니폼을 벗던가, 아니면 잘생긴 얼굴 남을 주던가.. 순간, 에코백에 고이 모셔둔 직원증을 꺼낼까 하다가 참았다. 미스터리 쇼퍼라 한들, 암행어사 마패란 한들 소용없었다. 그의 목에 걸린 사증과 내가 소지한 직원증은 달랐다. 그러게, 짐을 싸는 과정에서 효용 가치 하나 없는 직원증은 가져와서 이 난리인지..
트라팔라 광장 한편에서 때마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GAZA 지역의 폭격을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었고, 그 시위의 한 중간에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구하셨는지는 몰라도 한 손에 커다란 피켓을 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광장 중앙의 분수대에 자리를 잡은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다. 그 모습은 마치 기수단 같기도, 무리를 이끄는 선봉장 같기도 했다. 가슴팍에 단단히 붙인 스티커까지,, 모르는 사람의 눈엔 여행자 아닌 시위에 참여한 일원으로 보였으리라. 여행 준비 과정 막바지까지 틈만 나면 제동을 거시더니, 지구 반대편에서도 아빠는 반대 전문가였다. 이에 고개는 절레절레 반응했지만, 차츰 적응하시는 듯한 아빠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흐뭇해졌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엄마는 분수대 안에 자리 잡은 동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셨다.
"내가 등으로 가릴 테니, 니 긴 팔로 동전 몇 개만 줍자. 쭉- 뻗으면 집고도 남을 위치야."
바깥 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려는 아내의 모습,, 눈에 익은 익숙한 그 모습에 짠하다기보다
되레 웃음이 앞섰다.
트라팔라 광장을 등지고 Charing Cross 역으로 향하던 중, 우측으로 돌린 시선에 태극기가 들어왔다. 이끌리듯 도착한 건물에는 한국 문화원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원이라 적힌 네모난 금박판이 붙어 있었다. 거북이처럼 잔뜩 목을 끄집어내 바라다본 쇼윈도 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네킹이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한국 대사관이 시내 한복판에 있을 줄이야. 경비가 이리 심심해서야."
뒤따라온 오빠의 음성이었다. 비자, 여권 발급, 여행증명서, 공증, 출생 신고 등의 업무를 하는 오빠가 말한 대대사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였고, 엄밀히 말해 이곳은 한국 문화원이었다. 그림, 사진, 책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출입이 자유로울뿐더러, 게다가 지하 1층에서는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책 대여도 가능하다 했다.
저가 항공의 특성상 같은 노선이라 해도 날짜에 따라 금액은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런던-니스행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았던 관계로, 이지젯을 선택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접속 후 안내대로 예약을 한 다음날 날아온 booking mail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블 예약이었다. 예약 도중 에러 메시지가 뜨며 잠시 화면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급한 마음에 이지젯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되돌아온 것은 'line is busy'라는 칼칼한 기계음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메일을 보내 보았으나 이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런던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호소했지만, 종종 발생하는 일이지만 도울 수 없는 입장이라며 마치 제 일처럼 아쉬워했다. 결국, 그녀의 tip으로 카드사를 통해 문제는 완만히 해결되었다. '환불 NO!!'를 외치는 이지젯의 악명 높음을 이미 접했지만, 내가 피해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때마침, 1층과 지하를 분주히 오가는 여자 직원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비록 내가 통화한 그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감사 인사를 표하고 싶었다. '수고하세요!!' 수줍게나마 마음을 전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KFC는 프로모션 중, 치킨 버켓+콜라가 9.99 파운드였다. 피시 앤 칩스만큼은 아니어도 치킨과 콜라도 나쁘지 않았다. 매장은 비좁았고, 몇 개 안 되는 좌석 또한 우리 몫은 아니었다. 포장한 치킨과 콜라를 들고 이슬람 사원을 끼고돌았더니 그네와 미끄럼틀뿐인 다소 썰렁한 놀이터가 있었다. 부모님께 그네를 양보하고 오빠와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치킨을 들고 열심히 뜯었다. 주문을 받았던 직원은 이슬람인이었다. 저나 나나 같은 신세라 여겼는지,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콜라를 꺼내 건넸다. 병째 들이켠 콜라는 청량감이 과도했다. 사레가 들렸으니 말이다. 연거푸 이어진 기침에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따듯한 그의 마음이 불러온 사태였다. 돗자리 위 아닌, 쪼그려 앉아 먹는 치킨이었지만 맛은 기가 막혔다.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인지 그냥 웃음이 났다. 이 또한 추억이 될 거라는 아빠의 말씀에 목울대가 요동을 치던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휴지가 내 얼굴을 때렸다. 어슴푸레한 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놀이터엔 우리가 쏘아 올린 웃음소리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