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무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두 발이 이끄는 대로 가보자 마음먹었다. 영화 <노팅힐> 속 줄리아 로버츠의 기자 회견 장소였던 샤보이 호텔을 지나 본드 스트리에서 눈에 물집이 잡힐 만큼 윈도쇼핑을 즐겼다. 아무래도 가족 중에 날씨 요정이 있는 듯했다. 오늘 역시 해님이 격한 인사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반가웠는지 세인트 제임스 파크 잔디 위에선 사람들이 시체놀이 중이었고, 돗자리를 펴고 안 펴고에 따라 현지인과 여행객은 구별이 되었다. '첫 아이는 멋 모르고 키우지만 둘째 아이는 경험으로 키운다'는 말처럼, 두 번째 여행은 여러모로 많은 준비를 하게 했다. 미리 공수해 온 돗자리 위에서 오빠는 大자로 뻗어 꿈나라 여행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층의 4인실을 배정받은 오빠와 아빠의 룸메이트 역시 한국인들이었는데, 청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했다. 양말과 발에서 흘러넘친 꼬랑내와 땀 냄새에 습한 공기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고 했다. 어찌어찌하여 까무룩 잠이 들려하면, 출입문 여닫는 소리에, 계단 오르내리는 소음까지 겹쳐 그나마도 어려웠다고 한다. 통금 시간에 제한이 없어 비교적 출입이 자유로웠고, 주인 아닌 스태프들이 운영하기에 젊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다. 밤을 낮 삼아 생활하는 그들의 패턴을 말해 무엇하랴. 이런저런 이유로 부족한 잠을 몰아 자는 오빠의 얼굴이 그저 측은했다. 오빠가 이러할 진대, 아빠의 불편함은 말해 무엇하리. 괜히 찔린 나는 아빠의 동태를 수시로 살피며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1824년 설립된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의 주요 컬렉션은 영국 국민들이 소유주인 관계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왕궁 마구간이었던 자리에 지어진 갤러리로, 공간 확보의 어려움으로 밀뱅크(Millbank)에 위치한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로 이관하는 등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규모뿐 아니라 전시한 작품 또한 유럽의 여타 국립 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다소 시시하다 할지라도 1832-1838년에 걸쳐 총 네 번의 확장 공사를 거친, 대영 박물관과 함께 영국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조토(Giotto)부터 세잔(Cezanne)에 이르는 유럽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시기의 주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중에서도 15-16세기의 이탈리아 회화 컬렉션은 이곳의 방점이며, 수많은 박물관들 중 가장 으뜸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구구절절한 책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발도장 찍으려 한 것은 비단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인접해서만은 아니었다. 미술학도는 아니라 한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 방문은 필수라 여겼고, 그런 면에서 내셔널 갤러리를 건너뛸 수 없었다. 여행책은 모네의 수련 <Waterlilies>,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고흐의 <Sunflower> 감상을 종용했으나, 이와는 다르게 램브란트의 <자화상>, 고흐의 <Sunflower>, 보티첼리의 <Venus and Mars>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교과서에서 이미 익힌 램브란트, 뛰어난 색감으로 시선을 잡는 고흐, 이름만으로 걸음을 멈추게 하는 보티첼리,, 첫 번째 여행, 피렌체 일정 중,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그런 이유로 도착한 우피치 미술관은 낯선 세상인 동시에 생경스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공간이기도 했다. 미술학도도 아닌 내가 전공자만큼이나 열의를 불태웠으니 말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역사는 그를 정의하고 있었고,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며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홀린 듯, 취한 듯,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분명 그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 <봄> 만큼 강렬하고 신비롭지는 않았으나, 우피치 미술관에서 접하지 못해서인지 <Venus and Mars> 역시 나의 발과 시선을 붙잡았다.
보관료 없이 짐을 맡아준 리셉션 스탭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민박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LIverpool Street Station과 맞닿아 있는 155 Bishopsgate였다. 숙소와 근거리인 관계로 걸어가던 중, 이름 모를 상점 앞에 셜록홈스가 서 있었다. 청동상 아닌 버버리코트를 입고 입에 파이프까지 문 어른 키만한 마네킹이었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모습이 반갑다기보다, 되레 더위만 가중시켰다. 한 김 식은 열기였지만, 잔뜩 내려앉은 농익은 화염은 목덜미에 송골송골 땀을 맺히게 했다. 모자에, 코트에, 거기에 입에 문 파이프까지 더해져 말은 안 해 그렇지, 그 역시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듯했다. 물론 빗줄기만 하염없이 본 누군가는 부러워할 테지만, 내리꽂는 태양도 나름 고충이었다 말하고 싶다. 그를 보고 있자니 절로 온도가 올라가는 듯해 서둘러 돌린 시선에 그들이 있었다. 반가운 모국어, 그러나 반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스무 살은 넘긴 걸까? 솜털이 보송한 그들은 유학생이라 소개를 했고,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커플임에 확실했다.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걷는 내 걸음걸이는 마치 아이 두고 가는 어미와 같았다. 얼른얼른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해서 휙- 돌아보았지만, 그들은 없었다. 이에 제자리를 찾은 시선에 엄마의 옆얼굴이 새겨졌다. 남의 자식이었지만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괜한 기우일 수도,, 그러나 이만큼 살아 보면 안다. 굳이 찍지 않아도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도시엔 어둠이 가득 찼고 사람들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8시가 조금 넘어서야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석구석 살피지 못한, 런던 시내가 저만치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럼에도 8파운드의 공항행 버스가 전혀 아깝지 않은 이유는 오직 니스!! 출발한 지 1시간을 훌쩍 넘겨 목적지인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하니 10시에 가까웠다. 공항 밖의 공기에 오소소- 몸은 절로 떨었고, 훅- 들어온 찬 기운에 서둘러 들어간 공항 내부는 훈훈하다 못해 살짝 덥기까지 했다. 손잡이 없는 3단 의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에 반해 바닥은 침낭을 펴고 널브러진 여행자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른 새벽 분주히 떠날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히스로 공항과는 달리 스탠스테드 공항은 그야말로 여행자들이 주 고객이었다. 히스로 공항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서의 노숙으로 인해 지레 겁을 먹었건만, 새우잠과 한뎃잠을 면했으니 다행이었다. 티켓팅은 새벽 5시 30분, 직원을 통해 위치까지 미리 파악한 후,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는데, 양의 수를 세는 대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에 유종의 미라 여기며 겁도 없이 까불어댔다. 곧 닥쳐올 재난은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웅성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다섯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짐 정리를 하는, 끌낭의 무게를 재는, 줄을 서겠다고 실랑이를 하는 사람들로 공항 내부는 도떼기시장 같았다. 크게 기지개를 켠 후 어젯밤 미리 확인해 둔 창구로 이동을 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이에 순응하여 그 끝에 자리했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어슬렁 거리다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대뜸 티켓을 보여 달란다. 응집한 사람들 가운데 하필 나를 짚었기에 인종차별인가 생각했다. 불쾌한 내 감정 따윈 아랑곳 않고 티켓을 꼼꼼히 살핀 다음 그는 말했다.
"This is the ticket line to Prague."
"I already checked with the staff last night."
"The ticket line has changed Hurry up."
제 말을 증명하려는 듯 그는 전방의 모니터를 가리켰고, 모니터에 새겨진 굵고 커다란 글씨는 그가 말한 것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티켓 검사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종종 있는 경우라 했다. 아마도 그는 저 앞에서부터 훑고 훑어 내 차례까지 왔을 터,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원의 설명과 모니터에 의지해 도착한 니스행 창구에 늘어선 사람들을 따라 꼬리칸에 섰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직원과의 독대가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수하물 트레일러에 캐리어를 올렸지만 전표를 두르지 않았다. 고장이란다. 흔한 일이라는 듯 태연하게 수하물 전표를 건네며 어딘가를 대충 가리켰고, 직원의 설명대로 트레일러에서 캐리어를 내리고 보딩 패스를 손에 쥐었다. 고장 날 수 있지, 그러나 무미건조한 그녀의 응대는 거슬렸다. 아니 심히 불쾌했지만 비단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가 대충 일러준 수하물 트레일러를 찾아가는 길에 이지젯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눈에 띄었다. 망설임 없이 booking mail을 건네며 더블 예약에 대한 항의를 했지만,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A4용지로 제 얼굴을 가린다. 이로써 Customer Service Center Number가 적힌 종이가 그녀를 대신했다. 말 섞기는커녕 상대조차 하기 싫다는 얘기였다. A4용지 뒤로 숨은 그녀는 데스크의 여직원보다 한 술 더 떴다. 똥을 피했더니 폭탄을 밟은 격이랄까? 첫 여행의 출발을 며칠 남기지 않은 그날엔, 영국의 어느 공항에서 폭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상황은 물론 범인의 내적 상태는 모르는 바나, 내 심정 역시 이에 못지않았다. 신사의 나라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열린 뚜껑을 간신히 부여잡고 수하물을 부친 후 출국 심사대로 향했다. 그러나 이는 휘몰아칠 폭풍우를 경고한 전조 증상임을 이때까지는 몰랐다.
경보음은 요란스럽게도 울려댔고, 흑인 여자 직원이 곁으로 와서 금속 탐지기를 들고 머리 위부터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정확히 아랫배로 향한 탐지기로 인해 반사적으로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녀는 경직된 표정과 딱딱한 말투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명령했다. 그러고는 저만치 떨어져 있던 남자 직원을 향해 눈짓을 했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로 돌변한 그들로 인해 고분고분 지시에 따랐다. 탐지기는 복부 언저리에서 천천히 맴돌았고, 탐지기를 따라 이동하는 그놈의 시선은 내 신경을 자극했다. 금속 탐지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이에 어쩔 수 없이 청바지 안에 단단히 숨긴 복대를 꺼내 심사대의 철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복대를 집어 든 직원은 지퍼를 열어 안을 살폈고 사진기의 휴대용 메모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차!!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다. 이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메모리 카드를 도로 집어넣던 그녀의 손동작이 뚝- 멈췄다. 그러고는 유로가 담긴 지퍼백을 꺼냈다. 돈봉투를, 그리고 남자 직원을, 마지막으로 나를,, 차례로 훑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500유로였다. 정확히 말하면 100유로 5장이었다. 금속 탐지기의 끄트머리가 지퍼백으로 향했다. 열어보라는 걸까? 아니면 설명을 하라는 걸까? 금속 탐지기가 목놓아 울어댄 원인도 해결책도 찾았는데 구태여 돈봉투까지 확인시킬 의무는 없었다. 적어도 내 상식선에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이성과는 달리 이미 폭주한 감성은 지퍼백에서 꺼낸 돈을 직원의 눈밑 언저리까지 들이밀고 있었다. 여기에 보태어 입출국 심사를 위해 늘 소지하는 비행기 예약 메일까지 꺼내 놓았다. 말 그대로 한 번 해보자는 으름장이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이 힘이 나온다 하였던가!!
"보다시피 나는 여행 중이야. 알다시피 나는 서른을 넘어섰고, 그리고 확인한 바와 같이 자그마치 63일의 일정이야. 500유로가 뭐라고 동물원 원숭이 취급이야!!"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그러나 머릿속에 엉킨 말들이었으니 비슷하게 토해냈으리라 믿는다. 가도 좋다는 손짓에 심사대 위 널브러진 여권과 티켓을 거칠게 움켜쥔 후, 그녀를 노려보았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시종일관 밥맛 없던 그놈 역시도 찌를 듯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그녀가 과했던 걸까? 아니면 나의 과민한 반응이었을까? 저만치 서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가족의 곁으로 갔다. 앞뒤로 서서 나를 호위하는 아빠와 오빠, 그리고 말없이 등을 쓰는 엄마,, 가족들의 위로 덕에 치솟았던 화는 조금 사그라들었다. 애써 태연한 척해보았지만 그렇다고 쉬이 진정되지는 않았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뛰다시피 도착한 출국 게이트의 데스크에 앉은 직원은 'final call'이라 적힌 팻말을 신경질적으로 흔들며 어디론가 무전을 치고 있었다.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기싸움의 기본 원칙을 의거하여 그녀에게 맞대응을 했다. 비행기와 분리되었던 이동식 계단이 다시 설치되고, 닫혀있던 출입문이 열렸다. 불만 섞인 표정의 승무원은 내민 티켓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손가락을 휙 뻗는다. 빈자리에 대충 앉으라는 뜻이려니.. 안전벨트를 채우자마자 기장의 안내 방송이 이어졌고, 기다렸다는 듯 비행기는 이륙 준비를 했다. 제때 티켓팅을 했더라면, 심사대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이리 헐레벌떡 런던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는 싫었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영국은 그렇게 이별을 알리고 있었다. 좋은 기억보다 반대의 기억이 먼저였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짧았기에, 서툴렀기에, 정신없었기에,, 그러했으리라.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나 보다. 그런 마음은 앞서 나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런던을, 그리고 영국을 자꾸만 뒤돌아 보게 했다.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 방송 직후, 비행기는 커다란 몸체를 숙였다. 아스팔트 아닌 바다 한가운데였다.
'i will survive' 삶에 대한 욕구는 필터링도 없이 터져 나왔다. 질끈 감은 두 눈이 무안할 만큼, 비행기의 두 바퀴는 바다 위로 난 쭉 뻗은 아스팔트를 따라 미끄러졌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착륙에 성공했다. 첫 여행 때였다. 비엔나 서역에서 출발한 야간열차는 수상도시의 랜드마크인 베네치아로 향했고, 바다 위로 놓인 철길 일명 '자유의 다리'를 내달렸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현명함에 다시금 놀란 순간이었다.
영국은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는 섬나라, 그 때문에 영국과 유럽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고, 영국이 1시간 늦기 때문에 니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시계부터 설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휴양지 니스로의 입성을 위해서는 입국 심사가 먼저였다. 영국에서의 실랑이를 알았는지는 몰라도 별다른 의심과 질문 없이 그는 입국 도장을 찍었다. 예약해 둔 숙소는 니스 중앙역 부근, ligne d'azur(1일 승차권)을 구입한 후 99번 버스의 뒷자리에 앉았다. 공항을 벗어나니 늘어선 야자수와 쪽빛 바닷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국적인 휴양지의 모습에 설레다 보니 어느새 니스역이었다. 그새 30분이 흘렀단 말인가?
지도를 참고해 도착한 숙소의 입실은 오후 세시부터 가능했고, 마주한 현실은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활동한 뇌는 기내에서 밀어 넣은 비스킷 몇 조각으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라, 호텔 락커에 짐을 맡기고 생라면이라도 씹어 먹으려 컵라면을 꺼내 들었다. 마침 그 모습을 보았는지 리셉션의 직원은 전기포트를 우리 앞에 내밀었다. 칼칼하고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니 이내 몸은 행복함을 표했다. 체형은 전사요, 얼굴은 천생 여자인 리셉션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Hotel Belle Menniere,, 저자는 이곳을 친절하다 소개하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호텔에서 나오니 주택가로 이어졌고 여기저기 오렌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책에서 본 경고의 메시지는 견물생심의 욕구를 잠재웠다. 내 생각을 읽었던 걸까? 지나가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는 오렌지 대신 조그만 과일 하나를 건네셨다. 감사함을 표한 후 깨물어본 결과 살구와 흡사한 맛이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해변이 지척에 있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저 콧방귀만 뀔 뿐, 그러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는 바람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가고자 하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니스 비치는 유료와 무료로 나뉘며, 본격적인 바캉스철이 아니라 그런지 아직은 휑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선베드에 몸을 기댄 사람들과 누드 비치의 강렬함을 상상하다 보니 어지럽던 비바람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변덕스러운 유럽의 날씨였다. 해변 건너편 카지노 입구의 잘생긴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돈은 물론 출입카드 역시 없는 우리는 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라파예트 백화점과 Monoprix를 보니 파리인 듯한 착각도 불러왔다. 영국을 떠나면서까지 불편했던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치유되는 곳,, 니스..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