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코인을 넣어야 샤워할 수 있어요. 근데 시간이 짧아요."
"그럼 코인을 많이 달라고 하면 되죠."
"코인은 인당 1개, 그 이상은 지급하지 않아요."
매년 5월이면 개최되는 '칸 영화제'를 보기 위해 니스에 머물고 있다는 대학생이라 밝힌 그 남자들의 말처럼 코인은 딱 1개뿐이었다. 야박하게도 말이다. 옵션이라고는 욕실 하나뿐이었다. 이에 욕실 딸린 22유로의 방 대신 17유로의 방을 택했다. 인당 5유로면 자그마치 20유로를 아낄 수 있다는 빤한 계산이 공동욕실을 택하게끔 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낑낑 대며 좁다란 대리석 계단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3층 구석의 쪽방,, 문을 여는 순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친히 맞이할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왔다. 까마득한 오래전 누군가의 저택이었겠지, 이를 개조해 지금은 호텔로 운영 중인 듯했다. 쪽빛 바다를 기대했던 걸까? 방 안 조그만 쪽창을 여니 옆 건물의 외벽과 마주했고, 이에 실망했는지 김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선을 돌려 휘둘러본 숙소 내의 컨디션 역시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 서까래에는 군데군데 균열이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마룻바닥에서 삐그덕-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태초부터 있던 것은 분명 아니나, 눈과 비 그리고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족히 몇백 년은 굳건히 버틴 듯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란히 놓인 더블 침대에 시선을 고정하니 널 뛰던 마음은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엉덩이 아래로 전해지는 침대의 쿠션이 나쁘지 않았다. 혼자 아닌 가족과 함께가 아닌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금 둘러본 방 안의 온도는 그새 달아올라 있었고 좀 전과는 달리 따듯했다.
쏴아-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느릿하게 다리를 교차하는,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먹지도 않을 거면서 입은 왜 벌리는 건지 당최 모르겠는 흔히 접했던 영화 속 섹시한 여배우의 샤워신은 머리에서 지웠다.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 군필인 오빠의 면전에서 미필인 나는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코인 한 개가 토해내는 물줄기는 도중에 끊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새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더니 새 식구의 등장이 반가운지 녀석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엊저녁 창문 틈에 널어놓았던 가랑비에 젖은 운동화는 밤새 물기를 털어내 보송했다. 이래저래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한달음에 도착한 주방에서는 바게트와 크로와상, 커피와 핫초코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아침을 즐긴 후 숙소 근처 Monoprix에서 미리 구입해 둔 계란과 감자를 전기포트에 삶고 일정에 대한 최종 브리핑을 마친 후 숙소를 나섰다. 니스에서의 두 번째 날이 시작되었다. 두둥!!
GARE BOUNTISE NICE PAZUR (장거리 버스터미널)의 17번 플랫폼에서 니스-모나코행 100번 버스에 탑승을 한다. 인당 1유로라는 듣고도 믿기지 않은 가격에 그저 멍할 뿐이었다. 좁다란 골목을 돌고 돌기를 얼마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와 마주했고, 사람들이 내지른 탄성이 버스 안을 잠식해 버렸다. 니스- 모나코행 버스 탑승 시 무조건 오른쪽 좌석에 앉으라고 여행책은 물론 여행 선배들 역시 한목소리였다. 깊이를 또 넓이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푸른 바다의 위엄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입을 벌리는 것밖엔.. 경이롭고 실로 아름다웠다. 시선을 오른쪽에 두면 쪽빛 바다가, 왼쪽으로 시선을 두면 절벽을 따라 호사스러운 집들이 버티고 있었다. 사촌 언니가 그토록 극찬하던 '에즈의 언덕'이었다. 신과 인간의 걸작품을 넋을 놓고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모나코였다.
하차 후 그 즉시 인포메이션에 들려 니스행 버스 시간표와 시내 지도를 챙겼다. 모나코의 모든 길은 몬테까를로 지구에 위치한 카지노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려환 외관의 각양각색의 슈퍼카는 눈과 발을 잡아챘다. 드레스코드는 물론 입장료도 무리였기에 위풍당당한 슈퍼카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독일만큼이나 이태리 역시 자동차 강국임이 분명했다. 배경이 명품이니 덩달아 자신 역시 빛을 발한다며 사진 속 제 모습에 연신 호들갑을 떠는 오빠를 보면 말이다. 두 남자의 입꼬리는 눈밑 언저리까지 올라가 있었다. 슈퍼카가 남자들의 시선을 뺏었다면, 거리 곳곳에 세워진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공 레니에 3세의 사진에 여자들은 발길을 멈췄다. 배우이자 모나코의 공비였던 그레이스 켈리는 자신의 이름처럼 우아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슬픔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미 엿본 그녀의 삶의 한 자락이 촤르르- 펼쳐졌다.
도시국가이며 유럽을 포함한 주권 국가 중, 바티칸 시국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이 유엔 가입국이 아닌 관계로, 유엔 회원국 가운데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의 보호 아래 독립국이 된 모나코는 1701년부터 국방권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모든 국방권을 프랑스에 위임한 상태였다. 국민의 대다수가 프랑스인이며, 세금 면제의 혜택으로 인해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독일, 스위스, 미국 등의 부호들이 정착하고 있다. 즉, 원주민의 비율이 적다는 얘기다. 게다가 모나코는 국경의 삼면이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다. 요약하자면, 형식상으로 도시국가이며 주권 국가이나 본질적으로는 나라 안팎에서 프랑스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속국이라 해도 무방한 결국, 모나코와 프랑스는 한몸이라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준비하며 모나코를 예습하지 않았다면 제주도 혹은 하와이와 같은 선상으로 여전히 각인되었을 테니 말이다. 1861년 체결된 프랑스-모나코 조약에 의해 독립국가가 되었음에도, 1918년에는 모나코 공위의 계승권자가 없을 시, 마지막 공작의 사망 후엔 프랑스에 합병된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솔직히 프랑스 입장에서 볼 때, 모나코는 손이 많이 가는 곳이었고, 둘의 관계에 있어 프랑스가 우위에 있었다. 해서 그들은 '합병'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정작 마음이 급해진 건 모나코가 아닌 선박왕으로 알려진 미국의 부호 오나시스였다. 자신이 쏟아부은 돈과 노력을 프랑스가 꿀꺽 삼키는 꼴을 차마 못 보겠는 그는 레니에 3세의 신붓감 찾기에 열을 올렸고 그 결과, 그레이스 켈리가 낙점되었다. 대공과 배우의 만남부터 결혼까지의 과정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로써 레니에 3세는 프랑스로부터 모나코를, 오나시스는 자신의 재산을 지켰고, 그레이스 켈리는 현대판 신데렐라가 되었다.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스토리였다. 여기에 미국인들의 관심과 더불어 '면세'라는 달콤한 열매는 전 세계 부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던 중 1982년 그녀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존폐 위기에 놓인 나라를 지켰고, 관광업을 육성시켰다. 물론 그녀가 아니었으면 다른 누군가의 몫이었겠지. 그러나 그녀 스스로가 자원했다. 이는 모나코인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이리라. 그들은 거리 곳곳 사진들을 세워 두고 그녀 인생에서 빛나고 아름다웠던 그 찰나의 순간만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정작 한 여인의 삶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같은 여자라서일까? 감추기에 급급했던 여인의 삶이 먼저 다가와 사진 속의 그녀처럼 활짝 웃지 못했다.
1929년에 시작된 F1시즌은 아직인지, 항구와 머지않은 자동차 경기장은 조용했으나 정작 항구 주변은 각양각색의 요트들로 빼곡했다. 세금을 피해 이사 온 부호들의 요트와 또 요트 사이로 푸른 물살이 작게 일렁이고 있었다. 지중해의 푸른빛과 흰 요트의 색의 대비는 지극히 강렬했고 더없이 청량했다. 런던에서 이미 접해서일까? 도착한 모나코 대공궁에서의 근위병 교대식은 특별하지 않았을뿐더러, 깊이 각인된 여타의 웅장한 궁전들로 인해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건물의 외관에 그저 심드렁했다. 한마디로, 가파른 오르막길에 투자한 시간과 체력에 대한 완벽한 보상은 아닌 셈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훗날 지금 이 순간을 회상하겠지!! 해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것이겠지. 모나코는 내게 있어 관광지로서가 아닌 발레리나 강수진이 먼저였다. 왕립발레학교 교장에게 발탁되어 장학금을 받고 모나코로 출국하는 당시 상황을 TV를 통해 보았던 기억이 있다. 여고생이었던 그녀의 뺨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왕립발레학교도 아닌 대공궁에서 뜬금없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던 걸까? 괜스레 심란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발길을 돌렸다.
도착한 대성당은 여타의 성당과는 달리 작은 규모였으나 한데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성당의 건축 양식 아닌 CRATIA PATRICIA라 적힌 석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레이스켈리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었다. 그녀의 사망 후 레니에 3세는 20년 넘게 재혼하지 않았으며 결국 아내의 곁에 묻혔다. 그가 정권을 잡은 56년 동안 모나코는 정치, 경제, 관광업 등에서 그야말로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이렇듯 표면적으로 드러난 레니에 3세의 삶은 한 나라의 주군으로서도, 집안의 가장으로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레이스 켈리 또한 그러했다. 신데렐라의 실사판이라고 사람들은 그들을 추앙했다. 아니 이는 그렇게라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아닐는지.
해양박물관 옆 조그만 망루에 자리를 잡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과거 적을 감시하던 망루는 현재 포토스폿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폴>이란 만화가 있었다. 시간이 정지하면 주인공인 폴은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멈췄던 시간은 흐른다. 문득 그 주인공이 되고 싶어졌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 아쉬움만 쌓여가는 여행자의 그저 작은 바람이었다.
1.95 km2, 여의도 면적보다도 작은 땅덩어리는 교육과 교통 등의 생활의 편리 아닌 보고 즐기기 위한 위락시설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었다. 즉, 살아가기 위한 곳이 아닌 유흥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카지노, 자동차 경주, 축구 등의 돈벌이를 위한 관광업을 앞에 세우며 오직 돈을 끌어 모으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면세'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져가며 말이다. 마치 내일이 없는 도시일 거라 생각했다. 흥청망청 대는 곳이리라 상상했었다. 그러나 보고 느낀 모나코는 하나같이 반듯했고, 아픔으로 인해 스스로 단단해졌으며, 주저앉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찰나 같아 더욱 아름다웠던 그것들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디게 했고, 니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해 질 녘 모나코를 출발한 버스는 어둑해져서야 니스에 도착했다. 낮과는 달리 제법 선선한 바람이었건만 종일 달궈진 도로 위의 지열까지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실로 5월 초임을 의심케 하는 날씨였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거뜬했다.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종일 고단했던 몸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본다. 마지막 밤이어서일까? 등에 닿은 쿠션과 몸을 덮은 이불마저도 그저 포근했다. 그 옛날 이름 모를 하녀의 다락방만 같던 이곳, 숱한 밤을 보냈을 그녀가 뜬금없이 부러웠다. 가는 밤의 끝을 잡고만 싶은 순간이었다.
아침 7시 30분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좀 더 뒤척거릴 만도 하지만, 시간이 곧 돈인 여행길에선 사치일 뿐, 온기 가득한 침대를 벗어나 일정을 최종 점검한 후, 전기 포트 안의 감자와 달걀의 상태를 확인하고 곧장 공동샤워장으로 향했다. 야간열차 탑승을 위한 준비였다. 겉바속촉의 정석인 바케트와 달콤한 핫초코로 위장과 몸을 예열하고 호텔 유료 락커에 짐을 맡긴 후 오늘의 목적지이자 니스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니스성을 향해 출발했다. 마세나 광장에 막 발을 디딘 순간, 갑자기 신호가 와서 근처 맥도널드에 들어갔더니 공사 중,, 라파예트 백화점 화장실은 0.5유로였다. 유료 화장실 문화에 적잖이 놀라신 아빠는 내 나라의 좋은 점과 그놈의 정(情)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다. 애국심을 가장한 넋두리 같은 아빠의 하소연에 영향을 받았는지 몸은 아직 참을만하다는 신호를 보내와 다시 걷기를 얼마, 떡하니 나타난 맥도널드,,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내달려 시원스레 일을 해결해 본다. 솔직히 말해 아빠만큼이나 나 역시도 유료 화장실 문화에 꽤나 놀랐었고, 응당 내야 하는 한다는 금액 역시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생리현상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하루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기에, 더군다나 일정을 따져 본다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에, 아낄 수 있을 때 악착같이 아껴야지 마음먹었다. 배고프고 주머니 사정 궁한 여행자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말이다. 비겁한 자기 합리화라 해도 딱히 방법은 없었다.
좁다란 언덕길을 돌고 돌아 마주한 돌계단을 오르니 정상에 다다랐다. 위풍당당한 성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덩그러니 자리한 작은 기념품 가게가 나를 반겼다. 이에 실망스러운지 목덜미의 땀도 쉬이 식지 않았다. 행여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어 여행책을 펼쳤더니 니스성은 오래전에 부서져서 흔적도 없고 현재는 니스 전망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언덕이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라 적혀 있었고, 언덕길을 돌다 만난 공원 내부에 보이던 부서진 돌들은 고대 노트르담 성당의 잔해들이란다. 이런!!.. 하면, 그 전망이나 보자며 꼬인 심정으로 다다른 언덕 끝엔,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와 요트들 그리고 Côte d'Azur의 절정인 니스 해변까지.. 실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고, 한 폭의 훌륭한 풍경화와도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그 고마운 바람은 목덜미의 땀도 실망감마저도 모두 식게 했다. 책의 설명대로 니스를 한눈에 감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미리 준비해 온 삶은 감자에 버터를 바르고, 삶은 달걀과 바게트 그리고 소시지까지 곁들여 배부르게 먹고 나니 눈꺼풀은 절로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덜미가 따끔 거려 눈을 떠보니 대참사가 벌어졌다. 잠들기 전 분명 커다란 나무 잎사귀들이 해를 막아주고 있었으나 눈을 떠보니 작렬하는 빛과 마주했다. 옆 나무로 마실 간 해님이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오븐기 밖으로 나온 닭처럼, 멋대로 얼룩덜룩했다. 오월 니스의 햇살은 그야말로 독했다.
저녁 장사를 시작하려는지 항구에 정박한 호화 유람선들은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고, 옆의 작은 요트 위의 노부부는 신문을 보며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쭉 뻗은 돌난간에 털썩 올라앉아 대자연과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평소 겁이 많으신 엄마 역시 이에 동참하셨다. 이는 정녕 니스의 힘인가? 콧등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따라 시선을 돌린 곳, 저 멀리의 바다가 날 오라 손짓하기에 망설임 없이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고운 모래 대신 자그마한 자갈돌들로 빼곡한 광경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아슬아슬한 속옷 하나만 걸친 채 수영 삼매경에 빠진 아저씨를 따라 발을 담갔는데, 생각보다 차가운 수온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엄마의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는 물속의 어린아이는 그저 즐거울 뿐이다.
'그래요.. 혈기 왕성한 어린 친구는 안 춥지요!! 슬슬 무릎 시려오는 이모는 이만 발 뺄 테니 내 몫까지 실컷 놀거라.'
플랫폼 안으로 열차가 진입할수록 내 가슴은 크게 방망이질을 쳤다. '우리 네 식구 베네치아까지만 무사히 갈 수 있다면, 제발, 또 제발!!.. 나를 이리 좌불안석하게 만든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유레일패스 개시 후, 니스-베네치아행 야간열차의 좌석을 예약하려는데 only couchette 뿐이랬다. 급히 열린 가족회의의 결과는 베네치아 대신 다음 여정지인 밀라노로 노선을 변경하자는 것이었다. 야간열차 탑승 시 탑승 당일 pm 7시- 다음날 pm 7시까지의 열차 탑승을 제한하지 않는 유레일 패스의 장점을 활용해 베네치아 관광을 하려는 게 애초의 계획이었다. 일반 야간열차는 별도의 좌석비만을 지불하는 것에 반해 only couchette은 침대칸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좌석비는 인당 10유로 내외였지만 침대칸은 인당 32유로였다. 밤새 새우잠 잘 것 뻔하고, 기껏해야 반나절인데 과연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을까?를 염려한 두 남자는 현실을 직시한 의견을 내놓았다. 즉, 가격면에서, 체력면에서 따져 보면, 그냥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 베네치아가 보고프면 밀라노에 머물면서 당일치기를 하잖다. 물론, 니스-밀라노의 경로 수정이 가격면에서나 체력 면에서나 이점이 있었다.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니 생각은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밀라노-베네치아행 지역 열차의 비용이 적게 든다 한들, 유레일패스의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뜬금없이 고개를 쳐든 나의 무모함이 한몫을 했다. 첫 여행 때, 로마-스위스행 야간열차 역시 only couchette이었으나 복도 중간에 등받이가 없는 의자도 있었고, 침대칸 아닌 입석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본 적이 있었기에, 설마 좌석 몇 개, 아니 단 네 개는 있겠지 싶었다. 명색이 니스와 베네치아를 오가는 야간열차가 아닌가!! 게다가 인생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익힌 경험치였기에.. 해서, 다시 알아보니 콤파트먼트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는 말로 가족들을 설득해 애초의 계획대로 니스-베네치아행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only couchette임을 끝까지 함구했다.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도시였다. 다시 온다는 건, 말 그대로 기약 없는 약속이었기에 안 본 두 남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열차의 몸체는 꽤나 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스-로마와 니스-베네치아로 향하는 사람들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확인한 후 기차에 올라 접한 내부 상황은 내편이 아니었다. 기다란 복도에는 좌석 하나가 없었고, 속속들이 오른 승객들은 침대칸의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돌려가며 서성이고 있는 틀린 그림 같은 우리 곁으로 역무원을 다가왔고 말을 걸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티켓을 보여주세요."
"네.(유레일패스를 내밀었다.)"
"유레일패스 말고 좌석 예약 티켓을 보여주세요."
"침대칸은 필요 없어요. 이 복도에 서서 갈게요. 혹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지금 낼게요."
솔직히 말해 밑도 끝도 없는 억지를 부린 셈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곁에서 내내 지켜보던 외국인이 편을 들며 추임새까지 넣었지만 역무원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인당 30유로를 내던가, 아니면 저 앞의 로마행 기차로 이동한 후 제노바 역에서 내려 베네치아행 열차로 갈아타십시오. 로마행 열차는 여섯 칸 앞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다시 오겠습니다."
그제야 이실 짓고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시는 엄마에 반해 그저 어리둥절하신 아빠, 그리고 다시금 등장한 역무원으로 인해 우리의 대화는 뚝- 끊겼다.
"결정하셨나요?"
"로마행 기차로 이동하겠습니다."
"우리가 돈이 많이 없어요. 100유로는 안 되나요?"
자리를 뜨려는 역무원의 팔을 낚아채고는 아빠는 몸짓과 표정으로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단박에 아빠의 손을 뿌리칠 거라 생각했으나 웬걸,,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바로 우리 앞에 있던 침대칸을 열어 내부를 휙 둘러본 후 고갯짓을 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들어가지.'.. 아빠가 건넨 100유로를 상의 포켓에 재빠르게 쑤셔 넣은 후 신경질적으로 손짓을 했다. 유레일패스를 내놓으라는 것일 테지. 건넨 유레일 패스를 훽 낚아채더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돌려준다는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제 갈길을 갔다. 나도 잘한 거 하나 없지만 따지고 보면 저도 공돈 벌은 거고, 그럼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는데 덮어놓고 성질을 부리는 역무원의 태도에 왈칵 짜증이 솟구쳤다. 그런 와중에서 화가 솟구치다니 나란 사람도 참!! 역무원이나 나나 도찐개찐이었다.
"자니?"
"아직요."
"딴에 아끼려 한 거 아는데, 아낄 걸 아껴야지. 지나간 것은 다 잊고 푹 자자. 침대열차 요놈 괜찮다. 값어치 한다. 푹 자야 힘이 나지. 기운 없다는 핑계로 가이드 일 대충 하고 그러면 안 된다."
아빠의 한판 승부가 마냥 통쾌했던, 가족이라서 힘이 났던,, 그런 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 누워 반성 하나, 반성 둘,, 긴긴밤과 씨름하는 나는야 이름뿐인 가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