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실현은 도전의 서막이었다

by 이경보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연이 우리를 꿈꾸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존 업다이크)


26살에 갈망이 실현되었다. 도쿄에 도착한 지 1년 후였다.

도쿄에 있는 동경외국어대학교(東京外國語大學)이라는 국립대에 입학한 것이다.


합격자 발표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가슴 조이며 그 대학교 게시판에 다가가,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전율이 흘렸던 그 순간을.


합격자 확인 후, 그 게시판 바로 옆에 있는 공중전화로 한국에다 전화해 합격 소식을 알렸다. 나 때문에 창피해서 밖에 못 나가시겠다던 엄니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셨다. 올케언니는 내게 "인간 승리"라고 해주셨다. 오빠는 어려운 살림에서 쪼개내 대학 입학금까지 보내주셨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후, 아르바이트로 향하는 길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눈에 들어오는 나무, 건물, 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온 세상이 내 편인 것 같고, 모두가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이게 행복일까? 난생처음 느껴보는 희열.

마치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간절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꿈꾸고 동경했던 대학이라는 곳에 드디어 발을 디딘 26살의 나. 내가 들어간 곳은 일본어학과였고, 그 학과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정원이 외국인 30명, 일본인 15명이었으며, 커리큘럼은 유학생들과 일본 학생의 공동 과목과 별도 과목이 있었다.




입학하고 두 달쯤 된 어느 날, 일본 문화 관련 필수 과목에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셨다. 요즘은 고등학교에서도 리포트 과제가 흔하겠지만, 당시 상고 출신인 내게 리포트는 생소한 개념.

과제가 주어진 그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들이 우르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함께 따라갔다. 하지만, 어떤 책을 찾아야 할지, 리포트는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기에.




입학해서 두 달 남짓으로 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비록 같은 학년, 같은 반이지만, 우리는 결코 동일한 스터트 라인에 서 있지 않다는 걸.

여러 측면에서 내 조건이 열악했다. 학업 능력이 그렇고, 경제력이 그랬고, 체력이 그랬다.




우리 학과의 외국인 학생 30명 중 한국 유학생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적어도 전문대를 마친 학생들이었고 게 중에는 석사 학위를 가진 이도 있었다. 고졸자는 단 한 사람, 그것도 상고 출신.


1학년 때는 일본어가 많이 딸려 현지의 학생들과 같이 받는 교양 과목이 버거웠다. 대강당에서 이뤄지는 강의에다 칠판에 친절하게 써주지도 않는 교수님의 강의는 1학년 유학생에게는 소화하기 어렵기만 했다.




물론 알바는 생계를 위해 빼트릴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는데, 야간 시급이 높아 금, 토요일에는 밤부터 새벽까지 하기도 했다. 새벽까지 일하고 집에 걸어 돌아올 때면 몸이 붕 떠 있는 듯하고 발의 감각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편의점 알바는 식당에 비해 체력적으로 덜 피곤한 데다 매력적인 장점도 있다. 폐기처분한 도시락, 우유, 빵 등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어 식비를 줄일 수 있다. 폐기처분이라고 해도 도시락은 유통기한의 하루 전, 우유는 3일 전에 처분하기에 위생상 문제가 없었다.



허약 체질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면 몸이 아팠다. 몸이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해도 생존을 위해 저녁에 아르바이트 가야 할 때면 순간 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럴 적마다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루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마치 주문을 외우듯 했다.




26살에 실현된 대학 입학. 소망이 실현되면 그저 해피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갈망은 결코 목표점이 아니라 도전의 서막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련들, 그 시련들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오로지 내 몫인 크고 작은 도전들,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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