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에 올라가면서 우리는 분주해졌다. 1, 2학년 때는 일본 관련된 언어, 문화, 문학, 역사,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배웠다면, 3학년부터는 그 다양한 분야에서 어느 쪽으로 공부할지 큰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3학년 때 정한 코스에서 마음속에 생각하는 예비 지도교수님 강의를 이수하고, 4학년 때에는 그 교수님 지도 하에 졸업논문을 써야 졸업할 수 있다.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면서 많은 학생들이 고민을 했다. 특히 유학생들은 졸업 후 진학할지 귀국할지, 진학하게 되면 어느 방향이 유리한지 등, 인생 여정이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고민의 강도는 일본 학생들보다 한층 강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질 때 기댈 수 있는 게 앞서 걸어간 선배들의 조언이다. 유학생들 간의 유대 관계는 좋았고, 선후배 관계도 끈끈해서 후배들의 진로에 대해 선배들은 서슴지 않은 의견을 내주었다.
언어 쪽 그중에서도 일본어 문법으로 결정하려는 내게 선배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많은 영역 중 왜 하필이면 일본어 문법이냐는 거였다.
우리 학교는 외국어학교로서 언어의 각 연구 분야의 제1인자 교수들이 많았고, 그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기준 또한 높았다. 언어 쪽을 선택한 유학생 중에는 교수들 아래에서 버티지 못해 중도 하차하는 유학생들이 있고, 진학할 때도 진학 시험이 다른 영역보다 힘든다는 것이 선배들의 종합적인 의견이었다. 한 선배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외국인으로서 깊은 연구 역사를 가진 일본어 문법에 도전하는 것은 개고생 하려고 작정한 거야."
한두 명의 선배 의견이면 개의치 않으련만 만나는 선배마다 대동소이한 의견으로 신중히 생각하라고 했다. 한 번 정해진 코스를 바꾸기에는 꽤나 에너지 소모되는 일이며, 지도교수를 새로 찾아야 해서 잘못하면 제시간에 졸업할 수 없는 위험도 뒤따른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대학 1학년 때,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강의가 하나 있었다. 일본어 문법 강의이다.
그 강의를 담당한 교수는 우리 학과에서 가장 엄격하다고 소문난 분이었다. 엄격하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교수 평가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 교수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을 하는 선배는 없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말은 다른 교수에도 적용되니 그렇다 치고, 성적이 짜다는 말에는 경계심을 품게 했다.
그 교수의 강의 방식은 유사한 문법과 문형을 칠판에 적고 학생들에게 차이점을 생각해 보라는 형식이었다. 생각을 하고 의견을 내놓으면 그제야 교수님의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의 생각이 틀리면, 틀렸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그럴까?’ 혹은 ‘음…’하며 여운을 남기고 다음 생각을 기다려주시곤 했다. 일방적으로 교수님이 설명하고 자신의 문법관을 학생들에게 피력하시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사고하게끔 하셨다.
누구나가 사용하는 언어는 대부분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언어에는 규칙이 존재하는데 그 당연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문법 연구라고 하시던 말씀. 그 규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보면 그렇지라고 무릎 칠 수 있는 것이 문법 연구라 하셨던 말씀도 1학년인 내게 신선하게 와닿았다.
1학년 때의 그 강의에서 아마 나는 처음으로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단순히 암기식, 주입식 배움이 아니라 사고하고 또 사고해서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그 강의 시간은 나의 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매주 한 번 있는 그 강의를 마치 데이트를 기다리는 듯한 설렘으로 기다리곤 했다. 내 귓가를 맴돌았던 그 교수님의 평가들은 설렘과 두근거림 앞에서 잊혀 갔다.
선배들의 정성 어린 조언들 앞에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정한 진로가 흔들이는 가 싶었다. 그러나 내겐 가슴이 뛰고 몰입할 수 있는 강의는 일본어 문법 외에 딱히 없었다. 여러 재능이 없었기에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된 부분도 있었다.
선배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내 가슴이 알려주는 대로 따른 내 선택은 옳았다.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했기에 자연스럽게 열정이 솟구쳤다.
열정이란 것은 마음먹는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이라 생각한다.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했기에 열정이 생겨났고, 그 열정이 점점 불타올라 몰입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연구에 몰입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최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조지 버나드 쇼)
돌이켜 보면, 좋아하는 공부를, 내 취향에 맞는 교수님을 만난 건 대행운이었다. 그 어느 한쪽이 결여되었으면 내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고, 내 열정의 꽃도 완전히 피어오르기 전에 사그라져버릴 수도 있을 일이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 선택한 길이라 할지언정 늘 순탄할 수만은 없다. 가는 여정에서 힘들기고 하고 때로는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열정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