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에 65점!?

by 이경보

학생들이 자평의 시간을 갖는다. 한 해가 저물어갈 즈음, 혹은 자매교에서 단기 유학생활을 마친 학생들이 돌아오면, 그들의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학생들은 100점 만점으로 자신의 점수를 매기고, 그 이유를 적도록 한다. 먼저 혼자 작성한 후, 조별로 나누어 자신의 점수와 그 이유를 서로 나눈다. 이 모든 과정은 한국어로 진행되며, 4명이 한 조가 되어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유학생이 함께할 때는 한국 유학생들의 서툰 중국어와 대만 학생들의 부자연스러운 한국어가 엇갈리며, 수업은 한층 활기를 띤다.


수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별 논의 후, 각 조에서 점수가 가장 낮은 학생이 나와 발표하도록 한다. 매년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6조에서 7조로 편성되며, 각 조에서 한 명씩 나와 발표를 한 후에는, 이번에는 점수가 가장 높은 학생이 앞에 나와 발표하게 한다.


점수를 가장 낮게 매긴 학생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거의 웃지 않고 비관적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는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있고, 보통인 학생도 있으며, 성적과는 무관하다. 비관적인 학생일수록 자평에 대해서도 인색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의 자평.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유달리 낮은 65점을 매긴 학생이 있다. 그 이유는 한국에 가면 한국 친구를 만드는 게 목표 중 하나였는데 그걸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다른 목표는 뭐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능력시험 토픽 6급 취득이라며 그건 달성했다고 했다. 그 학생이 최고 등급인 6급을 땄다는 말에 나는 내심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은 자신에게 반 친구 중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준 것이다.


이번에는 제일 높은 95점을 매긴 학생이 있다. 그 이유는 유학 기간 동안 한국 곳곳을 즐겁게 여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어능력시험에서는 5급을 취득했다. 이 학생은 평소에도 명랑하고 긍정적이며 반친구와 교수들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이 단기 교환유학으로 1년간 한국 자매교에 가는 것은 설렘 반 불안 반이다.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학연수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드라마 속에서 보던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세우고 한국에 간다.




한 학생은 자신에게 최저 점수를 주었고, 다른 학생은 최고 점수를 주었다. 최저 점수를 매긴 학생은 과연 유학생활을 형편없이 보낸 것일까? 이 학생의 원래 가진 한국어 실력을 고려하면, 한국에 가서 반년 만에 최고 등급인 6급을 취득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또한, 다양한 성취와 좋은 추억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물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여행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자신이 실현하지 못한 목표에 집착하고 있다.


반대로, 최고 점수의 학생은 유학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것일까? 어학연수 1년 후 5급 취득에는 이 학생 나름 열심히 했겠지만 좀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즐겁게 지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늘 밝고 교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매년 이 주제의 강의를 진행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단면이라고 느낀다. 최저 점수의 학생의 목표 중 하나였던 ‘한국친구 만들기’는 이 학생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대만에서도 친구가 없고, 늘 혼자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이 언어의 장벽이 있을 한국에서 한국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때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실망한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왜 난 못하지?'라고. 그 학생도 토픽 6급 취득한 자신의 성과를 높이 평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족함에만 집착하고 있다. 즉, 가진 것에 대한 감사는 없이, 갖지 못한 것에만 아쉬워하고 있다.


우리의 행복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자기 사랑이 싹튼다. 그리고 나만이 이해하는 내면의 장점과 재능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기쁨과 행복이 있지 않을까? 그 작업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매긴 점수를 조별로 나누고 발표하게 하는 과정은 단순히 한국어 회화 연습을 넘어서, 타인의 자평과 그 이유를 들으며 자신의 평가도 재점토하라는 중요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점수가 합리적인지, 즉 나 자신을 합리적으로 대하는지 재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하워드 가드너의 말이 떠오른다.


불행한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사모하고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한다.

(하워드 가드너)




오늘도 강의실에는 다양한 감정이 흐르고 있다. 어떤 학생은 웃고 있고, 어떤 학생은 불안해하거나 괴로워한다.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고유한 장점과 재능을 찾아내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의 자평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바람은 또한 나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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