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학생들의 이상형

by 이경보

2학년 1학기 작문(쓰기) 수업, 이번 주제는 “이상형”이다. 학생들이 쓴 “이상형” 작문을 수정하노라면 혼자 박소를 터트리게 하는 글도 있고, 나로 하여금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글도 있다. 우리 학과는 해마다 다소 다르긴 하지만 대략 95%가 여학생이다. 그 여대생들의 취향, 성격이 다르다 보니 각자 생각하는 이상형이 각양각색이다. 크게는 성격면, 외모면으로 나눠 조건들을 적어낸다. 한 학생은 평소에는 최소의 분량으로 꾸역꾸역 써내는 느낌인데, 이상형이라는 주제 작문은 최고 분량을 훌쩍 넘어 있다. 이상형의 조건들이 조목조목 쓰여 있다.

상냥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며,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와주고, 유모어센스가 있어 늘 즐겁게 해 주며, 나만 바라보는 남자. 외모 조건으로, 큰 키는 필요 없고 175센티미터 정도, 웃을 때 보조개가 있고, 복장은 늘 단정한 남자. 그리고 능력이 있고 많은 돈은 없어도 집 한 채 정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남자. 그 조건들에 대한 부연 설명도 적혀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체크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이런 조건의 남자가 한 명 더 있으면 제게도 소개해 주세요”라고 메모를 남겼다.




대만 여대생들이 말하는 이상형 중에는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라는 조건이 자주 등장한다. 나도 속으로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라면 좋지!'라고 생각하며 한국어를 체크해 나간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돈이 얼마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구체적인 금액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중 한 학생은 “물건을 살 때 금액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부자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부자들이 정말 물건 살 때 금액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집어 들까!? 그런 식으로 돈을 쓴다면 그 부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혹시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내 돈그릇의 한계 때문일까?




문득 20대에 내 이상형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이상형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참 한심한 청춘이다. 이상형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하나가 떠 올랐다. 난 결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독신을 꿈꾸었다. 고등학생 때쯤, 그러니까 35년 전쯤에 그 당시 잡지에 소개된 커리어 우먼의 사진들을 보며 참 동경했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불현듯 한 사람이 생각난다.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자, 내 인생 여기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이 들어, 그 후로 전화를 안 받았던 그 사람. 참회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았네.




삶의 중턱에 이르러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자신의 이상형이라는 점이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돈은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 현재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한 부의 소유자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부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부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다.


자신에게 부합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게 부합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100% 내게 완벽하게 맞는 사람, 나의 맞춤형으로 이 생에 태어난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어떤 측면이 부합하면 다른 한 측면은 삐걱거리지 않을까? 마치 종합선 무를 뜯어보면 마음에 드는 것도 있지만 싫어하는 것 하나, 둘은 꼭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형이라고 고르고 고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기에 결점을 감싸 안고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행복을 위해 상대를 찾고 결혼까지 한다. 다시 말하면 내 행복을 위해 헌신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결혼해야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하셨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이기적인 세포로 형성된 우리에게는 실로 실현성이 낮은 일이다.





명강사인 김미경은 한 강연에서 서로를 성장시켜 줄 사람이 좋은 파트너라고 했다. 남남이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으로 이어지는데 그 나이가 2,30대이다. 그 2,30대에 우리의 인생철학, 삶의 지혜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미완성인 우리가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의 성장을 기뻐해주고, 나이가 들어서는 성장한 서로를 보며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내 나이가 김미경 명강사 나이에 근접해서일까. 참 설득력 있고 수긍이 가는 설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끝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 멈춰버린 존재는 더 이상 파트너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매력이 많이 떨어진다. 남편 혹은 아내 어느 한쪽만 성장한다면 그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않으리라. 성장해 가는 상대방을 보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기뻐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멈춰버린, 정체되어 있는 혹은 후퇴하고 있는 상대를 보면서 포용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낼 수 있을까? 멈춘 내가 늘 잘 나가는 상대를 평온한 마음으로 문 밖으로 보낼 수 있을까? 예쁜 옷을 입고 나서는 아내, 멋있는 양복 차림으로 나서는 남편을 보고 내심 솟구치는 불안함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걸까?




삶의 중턱에서 깨달은 것은, 미완성의 자신을 인생의 바다에서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파트너가 이상형이라는 생각이다. 정답이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이는 내 가치관, 인생관, 철학의 기준에서 바라본 이상형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숙고하는 것은 그 어떤 공부보다 중요한 인생 과제이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생텍쥐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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