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바람도 꽤 세게 불었다. 태풍이 대만에 근접해오고 있다. 오늘 강의가 있어 운전하며 학교로 향하는데 걱정이 된다. 우리 학생들이 오늘 강의에 올 때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오토바이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비바람이 있는 날은 매우 위험하다. 학교에 도착할 즈음에는 우산 쓰기도 힘들 정도로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다. 오늘 강의에는 학생들이 많이 결석하겠지. 학생이 반도 안 오면 진도를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 텐데….
강의실 앞 복도에는 젖은 우산들이 펴 있었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40% 정도의 학생들만 와 있었다. 학생들의 축축한 머리카락에서는 아직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젖은 옷자락에서 흘린 물기는 의자를 타고 교실 바닥에 흐르고 있다. 슬리퍼에 젖은 발, 흠뻑 젖은 운동화, 피부에 달라붙은 옷. 젖어버린 가방 속에서 꺼내 펼쳐진 교과서들. 학생들의 마음과 몸이 모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강의 내용을 바뀌었다. 나는 먼저 이 비바람 속을 헤쳐온 학생들에게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해주었다. “여러분들은 대단하고, 훗날 꼭 성공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작문 주제를 “대단한 나!”로 하고, 내용에는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으로 채우라고 했다. 비난이나 비판하는 글은 한 줄도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나는 나를 사랑한다”로 마무리하라고 했다.
과제를 내주고 나니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났다. 강의실 문을 열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었다. 학생들은 느닷없이 주어진 주제에 다소 놀란 표정이었지만,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 한 학기에 한두 번씩은 그때의 특정 상황이나 사건에 맞춰 작문 주제를 내주기 때문에 학생들도 이런 나의 스타일에 다소 익숙해진 것 같았다.
30분 경과할 즈음부터 교실 안 분위기는 많이 차분해졌고, 학생들의 글 쓰는 손놀림도 꽤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듯하고, 어떤 이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가까이 가 보니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한 줄 정도 쓰고 멈춘 상태였다. 수심에 가득 찬 표정의 여학생.
“왜 안 써요?” 나는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요. 제겐 대단한 게 없어요.”
“왜 대단한 게 없어요? 내 눈에는 엄청 많은데.”
“……” 학생은 눈만 멀뚱멀뚱하며 나를 쳐다본다.
“난 네의 상냥함, 착함, 해맑은 미소가 대단하게 보이고, 늘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도 대단하고, 지각 한 번 안 하는 성실함도 대단하며,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자립심도 대단해요.” 나는 또 말했다.
“내가 아는 것이 이 정도인데, 내가 모르는 것도 더 있을 거 아니에요?”
내가 여기까지 말을 하니까,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쓰기 시작했다.
작문을 제출한 후, 학생들에게 지금의 심정을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을 수도 없이 써왔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글은 처음 써보았다고 말했다. 이 글을 쓰면서 자신에게 의외로 괜찮은 면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도 했다. 우리는 평소에 자신에게 인색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늘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에만 집중하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미워하며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학생들은 오늘 주제에 몇 줄 쓰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자신을 향해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을 잊고, 대신 비판과 질책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이런 습관은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억누르고 진정한 성장을 방해해 버린다.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의 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수업은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강의실을 나서니 비바람이 한층 거세졌다. 나는 문득 나 자신에게도 ‘대단한 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바람이 치는 오늘,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밝게 해 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