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학생 간의 심리적 거리는 얼마나 될까? 심리학에서 연구 주제가 될 만한 문제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수와 학생 간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마치 첫눈에 마주친 두 사람처럼 어색하다. 교실 안에는 서로의 거리감을 조심스럽게 감지하는 눈빛이 오가며, 눈이 마주쳐도 부드러운 미소보다는 서먹한 표정이 많다. 대화는 짧고 조심스러우며, 분위기는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세하게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모두가 익숙해지기 전까지, 이러한 서먹서먹함은 서로 인내해야 하는 과정이다. 학생 중에는 유달리 거리를 두는 이도 있다. 어쩌면 예전에 고등학교 아니면 초, 중학교 때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가가면 갈수록 빗장을 꽉 닫아버린다. 몇 년의 경험을 통해 그런 학생들은 그저 지켜보며 멀리서 관찰한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 척 관심을 둔다고 해야 맞을까. 사실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으려 연구실 문을 노크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교수가 관심을 갖고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도 별일 없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간극은 꽤 있는 것 같다. 이곳 대만 학생들도 별반 차이 없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서로의 간극이 많이 완화된다. 마음을 털어놓아도 될 존재로 인정해 주는 걸까?
입학해서 얼마 없어 눈에 확 띄는 여학생이 있었다. 첫 1학기에 굉장히 발랄하고 반친구들을 이끌어가는 듯한 리더십을 보여준 여학생이다. 외모도 대만애들과 좀 다른 세련미가 있고 예쁜 외모에 키가 키고 날씬한 학생이었다. 강의 시간에도 앞 쪽에 앉아 강의를 받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던 학생이 2학기가 되고 나서는 돌변했다. 평소 활발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과 몸짓은 이제는 거의 정지된 듯, 아무런 힘이 없다. 그녀의 말투는 생기가 없고, 대화할 때도 관심과 열정을 찾기 어렵다. 주변의 얘기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멍하니 있는 듯했다. 에너지로 가득 찼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툭하면 지각을 하고 가끔 결석도 했다. 옷차림에도 변화가 있었다. 예전처럼 꾸미지 않고 아무렇게도 옷을 툭 걸치고 온 느낌이다. 제시간에 강의실에 들어왔다고 해도 멍하니 앉아 있는 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그녀에게 다가가 몇 번인가 말을 걸고 관심을 주었다. 그녀는 내가 묻는 말에 “아뇨, 별일 없어요. 그냥 요즘 제가 게을러서요.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와 중에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 얼마 없어 작문 수업에서 “소중한 물건”이란 주제로 쓴 작문을 보고 내 의구심이 풀렸다.
그녀에게 소중한 물건은 어릴 적 아빠가 선물해 준 인형이다. 원래 그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빠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라 책장 한 구석에 진열해 두었는데 이제는 그 인형이 가장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부모님이 몇 달 전에 이혼하고 아빠가 중국으로 가 버려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산해 보니까, 부모가 이혼한 시기부터 지각, 결석을 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했다. 그래서 이 작문 내용을 가지고 그 학생을 불러 2시간 남짓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마음의 빗장을 풀며, 이제까지 지내온 가족 상황, 이혼 이유, 건강이 안 좋으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건강이 안 좋은 엄마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해줄 위로의 말, 조언이 떠오르지 않은 채 그저 곁에서 들어줄 뿐이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갈 길을 찾았는지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추천서 의뢰를 해왔다. 그녀라면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리라 믿는다.
“소중한 물건”의 작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중요한 말을 하나 하고 싶다.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소중한 물건 중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신이 땀 흘려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산 물건이다. 그중에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여 산 경우도 있다. 하여간 부모가 산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산 핸드폰, 노트북, 가방, 자전거 등이다. 그래서 그 소중한 물건을 자신의 분신처럼 다룬다고 한다. 나는 이 작문 내용들을 세상의 부모들에게 알리고 싶다.
우리 자식들은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으로 산 물건에 대해 그 소중함을 2배, 3배 아니면 그 이상으로 느낀다는 것을. 그래서 부모들이여,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자식들에게 과도하게 챙겨주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부모 지갑에서 나온 돈과 학생 자신이 모은 돈의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MZ세대의 젊은이들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삶의 이치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도 그렇지 않을까? 부모가 한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사준 집과 내가 힘들게 벌어 모으고 대출까지 껴가며 산 집, 이 둘을 바라보는 우리네 마음은 다르지 않을까? 곧 대학 2학년이 될 아들이 자신이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노트북을 산다고 말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그 노트북은 아들의 제1호 귀중한 물건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작문 수업을 지도한 지 오래되었다. 옆 학과인 영문학과에서는 학생들의 작문 하나하나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작문 수업을 담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내게도 주말 숙제가 되어 버린 작문 수정은 시간이 적지 않게 투여된다. 그러나 이 작문 내용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과의 교류 창구로서 사용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 작문을 마치 일기를 쓰는 것처럼 자신의 고민거리, 불안, 생각들을 마구 쏟아붓는다. 아직 학습 과정에 있는 한국어라서 자신의 마음,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갑갑함도 행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