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순간에 맞닥뜨린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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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이별을 고하는 아픔


‘남자친구하고 헤어져서 어제 할머니 집에 왔어요. 오늘 강의 못 가요’

2학년 여학생이 라인으로 보내온 한국어 메시지였다.
예쁜 미소로 인사하고, 통통하고 귀여운 표정을 자주 짓는 학생이었다. 나는 '알겠다'라고 회신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다음 주 강의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문자를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아직도 할머니 댁에 머물고 있으며,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아픔의 상처가 깊은 것 같은데 어쩌랴! 방 안에서 잊으려고 안간힘 쓰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틀 후에 만나자고 했다. 내가 맛있는 도시락을 시켜둘 테니까 같이 먹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틀 후 도시락을 시키고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꽤 신경 써서 좋아할 것 같은 메뉴의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학생은 거의 먹지 못했다.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 손수건으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헤어진 주요 원인은 상대방이 손찌검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과거에도 몇 차례 반복되었지만, 매번 사죄와 함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고, 그런 그를 용서해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상대방의 성장 배경과 생활환경까지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심을 굳히고 이별을 고한 것인데, 마음이 너무 아픈 것이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프지만, 서로를 위해 지금은 헤어질 때라고 말했다.

“상대방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늘 헌신적으로 챙겨주는 여자친구가 떠났을 때, 아마 그는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겠지. 그리고 희생은 사랑이 아니야.”

2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고, 그 학생은 내 연구실을 나갔다. 어떤 말로도 그녀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아, 며칠 동안 아름다운 풍경과 치유가 될 만한 음악, 영상을 핸드폰으로 날라 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수필집에서 만난 글이 자연스럽게 그 학생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면

너에게 상처되는 걸 알았을 때

상처되는 행동을 멈출 것이고

너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의 상처를 봐도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논리만을 주장할 거란다. (괜찮은 척했다, 79쪽)


그 학생이 졸업하고 반년쯤 지난 어느 날, 라인으로 한 남자 사진이 도착했다.

“교수님, 제 남자친구예요. 이번엔 전과 달리 괜찮은 놈이에요”

나는 미소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네 남자친구, 안목이 있네. 축하해!”라고 회신해 주었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오래된 것을 놓아야 한다. (노자)




이별을 통보받은 아픔


반대로, 이별의 통보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학생이 있다. 우리 학교 다른 과의 남학생과 교제하던 내 학생이 남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화가 난 나머지, 예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다소 과감한 사진들을 SNS에 올려 버렸다. 그 결과, 남자친구의 부모가 학교에 항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나는 내 학생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그 어떤 반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으리라. 내가 그때 한 모든 말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든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기회입니다. (헬렌 로우엘)


“우리 인생은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는 이별의 연속이란다. 이별이 있기 때문에 만남이 있고, 우리의 삶의 터는 넓어 보이지만 때론 무척 좁기도 해. 끝났다고 여겼던

인연이 돌고 돌아, 어느 날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그게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우리의 자녀가 그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단다. 그래서 인연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 10년 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손 흔들며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50평생 살아오면서 내 자신이 경험했던 이별 중에는 당연히 아름다운 이별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있게 깨달은 하나의 진리도 덧붙여 건냈다.

"상대방의 마음이 이미 떠났다면, 그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 것이 너 자신을 덜 아프게 하는 길이야. ”

“더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몇 번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니?" 라며 농담 섞인 말과 더불어, “떠나는 사람을 보내주는 것은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그토록 오래 바라보기 때문에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불교 교리 중 '무상'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모든 만물이 변한다는 진리다. 사람의 감정도 예외가 아니다. 감정이 변하니 만남 역시 무상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사람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시간이라는 특효약 덕분에 우리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난 날 나 역시 학생들이 겪는 듯한 아픔이 있었고, 그 때는 마치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결혼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그를 보냈을 때의 고통. 예상은 했지만 결혼한다고 하며 이별을 통보받았던 자리에서, 난 결혼에 관심없다며 강한 척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혼자 정처없이 길을 걸었던 기억.


과거형이 되어 버린 그 만남들도 그 당시 이유가 있어 나를 찾아온 것이었고, 또 이유가 있어 나를 떠나간 것이다. 그러한 삶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은 20대에게는 아직 어려운 일일 게다.

사실, 어느 나이에 이르러도 이별의 아픔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만남은 어느 날 불쑥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이별은 '용기'와 함께 '내려놓음'이라는 달관과 포기를 필요로 하기에, 만남보다 몇 배 더 힘들다.


20대의 이별, 처음으로 사랑이 남기고 간 쓰디쓴 맛은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을 것이다. 아파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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