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의
각본가와 배우가 된 대만 학생들

by 이경보

우리 학생들 중에는 K-Pop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본다. 나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서 학생들이 내게 추천해주곤 한다. 2학년 2학기의 한 강의에서는 K-드라마와 강연을 교재로 사용한다. 드라마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짧은 장면의 드라마를 대상으로, 조 별로 각자 좋아하는 드라마를 선정하게 한다. 드라마를 통해 듣기 연습을 하는 것 외에 드라마 속의 스토리에서 특정 상황이나 주제를 추출해 내어 토론하며 한국어 말하기 및 쓰기 연습을 한다. 지난 학기에서도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입시 문제, 대학에서의 성희롱 문제, 학생의 임신 문제, 댓글 문화, 직장 문화 등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국어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의 열기를 띄우는 것은 제시된 장면, 상황에 대해 같이 토론하고 토론한 스토리를 편집하는 시간이다. 여기서 2개 과제만 소개하려 한다.



학생들이 선택한 드라마에서 한 고등학생이 임신한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대학생의 신분으로 임신을 했다는 가정을 하고, 그 상황에서 누구를 찾아가 상담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그 장면을 상상하며 스토리를 편집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상황 제시를 하고 그 상황에 부합하는 한국어를 구사하라는 것인데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팅을 하고 있었다. 등장 인물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설정하고 그 등장인물들의 각본을 작성한다. 짧은 시간 내에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서 열심히 토론하고 작성한다. 학생들이 생각해 낸 상담 대상은 친구와 엄마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엄마가 더 많아서, 내심 안심했다. 수업 끝나기 20분 전에 10개 문장 길이의 대화체로 구성된 각본을 앞에 나와 발표한다.




“잘 생각해! 애 때문에 너 인생 희생할래?”라는 내용도 있고,

“남자친구랑 잘 얘기해 봐, 둘이 사랑한다면 애 키우면서 공부해도 되잖아”라는 내용도 있었다.

각 조가 발표할 때마다 어떤 내용이 나오나 우리는 숨을 죽여 들어야 했다.

“야, 너 미쳤어, 정신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괜찮은 연기 솜씨까지 곁들인 엄마 역의 말을 들으면서 박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학생들은 각자 “임신”이라는 중대한 숙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는데도 교실에는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또 한 드라마에서는 한국사람들의 식탁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토론 과제이다. 자식 둘과 엄마의 식사 시간. 그 엄마는 시험을 잘 본 자식에게만 고기를 주고 시험 못 본자식에게 고기를 못 먹게 한다. 이 부분에서 영상을 멈추고 과제를 제시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시험 못 본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엄마와 형제들과의 대화 내용의 각본을 작성하게 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호소하듯 쏟아냈다.


“엄마, 공부 못하면 자식 아니에요?” 라며 엄마에게 대드는 말.

“그래, 나 고기 싫어해, 고기 안 먹고 서울대 들어간다” 라며 오기가 치민 말.

“내가 평소에 고기를 적게 먹어서 시험을 못 본 거야.”라는 엉뚱한 말.

“언니, 매일 고기 먹고 그 점수야?” 라며 언니에게 공격적인 말.


학생들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절규를 내뱉는 듯한 감정과 어색한 한국어가 아우러져, 웃지 못할 장면인데도 웃음을 자아내는 발표들이었다. 이 때도 우리의 교실은 뜨거웠다.




오늘도 학생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지난날의 청춘으로 돌아가 그들과 하나가 되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 연구실로 가는 길에 학생들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게 된다. 오늘도 학생들의 진심 어린 소리들을 들으며, 두 아들의 엄마로 돌아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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