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가정과 직장의 양립

by 이경보

시대가 변했다 한들, 내가 알고 있는 나라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가정과 직장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상상 이상의 무척 고된 일이다. 그것이 국내가 아닌 해외일 경우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라는 과제가 추가된다.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현지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일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극치의 피로감에 긴장과 불안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일상을 보내야 한다.


유치원에 가서도 선생님과 학부모들과의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서도 의사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그뿐일까? 생활 면에 있어서도 내가 직접 처리하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직장은 어떤가? 행정일, 강의, 학생들 관리들은 모두 언어의 장벽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에 따르는 상당한 심적 부담감을 느껴야 했다.


20년 전의 옛 친구는 나에게 일본 유학이 엄청 힘들었겠다고 물어왔지만, 나는 유학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학 생활은 공부와 알바가 전부여서 비교적 단순했고,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했고, 일본 생활, 문화에 서서히 알아가면서 적응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닥쳐오는 부담감은 없었다.


그러나 대만 생활은 달랐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남편을 따라와 자리 잡은 이곳 대만에서 건강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 출산, 두 아들의 양육, 게다가 대학의 전임 교수 일을 하면서 내 심신의 피로는 극치에 달했고,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선 듯했다. 4년간 연속 독감에 걸렸고, 논문 한 편을 투고할 때마다 몸은 고스란히 반응을 했다.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나타났다. 몸이 이러니 내 마음도 평온할 리가 없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곁에서 보면서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는 방관자 같은 남편, 내 짐을 덜려고 가사, 육아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미움, 증오가 날로 커져만 갔다.




새벽 4시


시간이 늘 부족했다. 일을 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퇴근 후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만의 시간은 사라진다. 퇴근길에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데려오고, 집에 돌아와 씻기고, 저녁을 준비하고 먹인 뒤, 설거지를 하고, 숙제하라고 소리친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는 방과 후 학원으로 데려가고 다시 데려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밤 9시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학 교수를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방학 동안 집에 있으면서도 월급이 나오니 편한 게 보이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주부들이 평일에 집에 있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의 일 중에서 강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에 속한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일한다는 느낌을 잠시 잊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교수의 진정한 본업은 연구다. 강의보다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물론 교수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연구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결코 적지 않다.


연구에 몰두해야 했지만, 두 어린 아들을 둔 엄마로서 내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하루 중 어디선가 시간을 떼어내어 연구에 쏟아야 했고,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수면 시간 밖에 없다. 아들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은 9시에 잠잘 준비를 했다. 9시쯤에 불을 끄고 아들 옆에 누워 잠이 드는 척을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는 걸 봐야 안심하고 꿈나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꿈나라로 가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눈 감고 자는 척을 1시간. 보통 10시쯤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나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와 연구를 시작했다. 때로는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척하다가, 오히려 아들들보다 먼저 꿈나라로 갈 때도 있었다. 대부분 내 연구 시간은 10시부터 1시까지였다. 하다 보면 1시를 넘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냈을까. 결국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면역력이 저하되었는지 감기에 자주 걸렸고, 일본에서 겪었던 신경계의 통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2주에 1번 꼴로 접골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문득,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 시간을 조정했다. 아이들과 함께 밤 10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침 준비하는 6시까지의 2시간을 연구에 집중했다. 이렇게 하면 6시간의 수면을 유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피로한 몸을 끌고 책상에 앉는 대신, 피곤이 풀린 상태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체감 피로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연구 시간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지만, 맑은 정신으로 잡음 하나 없는 고요한 새벽 시간을 활용하니 효율이 높았다. 게다가 하루의 중요한 일과를 마치고 학교에 가니 출근길이 한결 가벼웠고, 학교에서의 시간도 마음이 편했다.


많은 연구 논문들이 바로 이 새벽 시간에 탄생했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수면 시간을 조정하고 새벽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여교수의 고충


하루는 60대의 총장님께서 우리 학과 회의에 참석한 날의 일이다. 우리 학과는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임 교수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다른 학과의 교수 몇 분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총장님도 우리 학과의 중요한 위원 중 한 분이었다. 학과 회의는 주로 점심시간에 열린다. 교수들의 강의 시간이 다 제각각이어서 점심시간에 열렸다. 이 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면서 가벼운 잡담도 살짝 오갔다.


총장님께서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던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젊을 때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연구실에서 연구하다 늦게 집에 들어갔지요. 당신네는 아직 젊으니까 연구실에서 좀 더 늦게까지 일하다가 귀가하세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총장님이 참 부럽습니다. 밤 10시, 11시까지 연구실에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있으셨다니요.

저는 오후 5시면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고, 집에 데리고 와서 씻기고 저녁을 준비해 먹입니다. 애를 낳고 젖을 먹이며, 아이를 안고, 아이가 노는 걸 보면서도 연구를 생각합니다. 아이를 재울 때는 자는 척하면서 연구를 생각하다가 아이가 잠들면 몰래 일어나 연구를 하죠. 주말에는 두 아들이 시끄럽게 놀 때 귀마개를 하고 논문을 읽고요. 여교수들에게는 남교수들처럼 자유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교수들은 남교수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과는 신설된 젊은 학과로, 교수들도 젊다. 특히 젊은 여교수가 몇 명 많다. 모두 결혼하고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내가 학과장이 되었을 때, 그 젊은 여교수들은 가끔 육아에 지친 이야기들을 털어놓곤 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뼈아프게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를 들으면, 마저 꺼내지 못한 다른 이야기들까지 눈에 선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교수들이 흔히 꺼내는 ‘파이팅! 열심히 해요’ 같은 말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쉬면서 해요. 인생 기니까 2,3년 늦게 연구 성과 나온다고 인생에 큰 흠이 생기지 않아요. 엄마가 너무 지치고 바쁘면 아이들도 쉽게 아프곤 해요. 그러니 과로하지 말고, 건강 챙기면서 일하세요. 그리고 이상적인 엄마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주말에 학교 행사 혹은 학과 행사가 있으면 여교수들에게 나오지 말라고 했다. 주말에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학교에 나오는 게 얼마나 에너지 소모하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해와도 교수들에게 혹은 우리 학과에 그리 도움이 안 되는 일들은 내 선에서 거절한 적도 몇 번 있다. 보이기 위한 영양가 없는 실적을 위해 교수들의 시간을 빼고 체력을 소모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리 큰 아들은 어릴 적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대학 교수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가 집에서 늘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각 분야의 장관들이 여성으로 더 채워져야 이 사회가 더 많이, 더 빨리 변모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여성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불균형한 제도, 낡은 생각들이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관념, 제도가 뒤바꿔져야 혼인율, 저출산율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이런 여성 문제가 본인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는 남성들을 접하게 된다. 이는 지금 당장 눈앞의 현상만 들여다보고, 이런 문제가 자신의 딸의 문제가 될 것이고, 며느리의 문제가 될 것이고, 사회 전체, 국가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의식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전 07화다시 찾아온 열등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