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어 전공을 선택한 학생

by 이경보

컴퓨터 천재


‘변원’이라고 쓴 2학년 학생. 똑같은 오류를 이 학생은 1학년 때부터 몇 번을 했고 나는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2학년 때 하루는 이 학생 작문 수정을 하고 나서 그를 불렀다. 네가 쓴 작문을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쉬우니까 공개하겠다고 하며, 이 ‘병원’이란 두 글자를 언제까지 틀리게 쓸 거냐고 웃으며 물었다. 머리를 극적거리며 빙긋이 웃는다.


이 학생은 컴퓨터 천재라고 불리는 학생이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 이 학생을 부르면 모든 게 순식간에 해결된다. 컴퓨터와 잘 친숙하지 못한 나도 몇 번인가 그의 도움을 받았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교실에 앉아 있을 학생이 아닌데 하고 생각하곤 했다.




어학의 재능만 빼고 다재다능한 학생


또 다른 학생은 1학년 때 한국어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내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키며 붙잡아놓고 1대 1로 공부를 가르쳤던 학생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이끌어 보려고 했지만, 그의 성적은 크게 진전이 없다.


그런데 이 학생은 다재다능했다. 내 눈에는 그의 그림 실력이 프로급으로 보였다. 사진도 기가 막히게 잘 찍었고, 요리도 잘한다고 했다. 학과 행사 때 큰 카메라를 들고 와 멋진 사진을 찍던 학생이 바로 그였다. 취미가 그림이라고 하길래, 그린 그림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어느 날 두꺼운 파일을 들고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의 그림들을 감탄하며 보고 있던 내게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라고 했다. 내가 고른 것은 강에 세워진 나룻배 그림이었다. 선물로 받은 그 그림은 그 학생이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연구실에 붙어 있다.


재능이 다양한 이 학생에게 왜 우리 학과를 선택했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학생을 많이 아끼고 좋아했다.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불쑥 연구실을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전에 내게 선물해 준 그림이 아직도 연구실에 붙어 있는 걸 보고 기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갔다. 아직 그의 요리는 먹어보지 못했다.




전과를 망설이는 학생


2학년 학생이 면담을 신청해 왔다. 정치외교 쪽에 관심이 있어 그쪽으로 전과를 하고 싶지만, 이제 곧 2학년이 끝나기 때문에 우리 학과에서 보낸 2년이 아까워 고민 중이라는 했다. 왜 어학과에 들어왔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결정하고 원서도 어머니가 작성해서 제출한 거라고 했다. 가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정치외교과로 전과한 후에도 한국과 한국어를 접목시켜 공부해도 좋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우리 학과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고, 전과 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는 했다.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2년간 배운 한국어, 한국에 대한 지식은 전과 후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그 2년이란 시간은 결코 낭비한 시간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도 이 학생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바로 취업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매달 한 푼 한 푼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은 5년 후에 대만에 어학연수 갈 때 유학비로 사용되었다. 그 돈은 내게 전재산이었다. 나는 그 전재산을 들고 대만에 와서 어학연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1년이 될 무렵, 내가 가져온 전재산은 바닥이 났고, 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만에서 대학에 진학하고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에 진학하려고 인생 계획을 재설정했다. 일본에서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고 일본어가 느는 만큼 어렵게 공부해 둔 중국어가 야속하게도 내게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대만에서 전재산을 다 쓰면 보낸 1년이 아깝고,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투자한 노력의 대가가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대만에 가지 말고 바로 일본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은 참 묘하다. 대만 타이빼이에서 1년간 살 당시, 나는 대만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대만을 떠나던 날, 대만 공항에서 대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비행기의 창문 너머로 멀어져 가는 타이빼이를 향해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대만에 머물며,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일본 유학하기 전 대만에서 어학연수로 보낸 1년은 결코 인생의 낭비가 아니었다. 그때는 쓸모없다고 여겼던 시간이 이제 와서는 인생의 큰 그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퍼즐 조각임을 깨닫게 된다.


돌지 않아도 될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온 시간만큼, 그 길에 놓인 수많은 양떼와 나무, 풀과 언덕을 가슴에 담을 수 있습니다. 삶에 낭비된 시간이란 없습니다.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라, 50쪽)


청춘은 방황의 시기라고들 한다. 그 방황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빨리 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좀 돌아가는 길 속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고, 뜻하지 않은 만남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찾아가고 창조해 나간다. 때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한 결단력도 필요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에는 실패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배움과 성공만이 존재할 뿐이다. 삶을 돌아보면, 지난날의 방황과 실패, 그리고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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