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의 논쟁

by 이경보

작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일이다. 자주 일어나는 문제가 또 발생했다. 월말고사가 끝난 후, 시험 해답을 두고 선생님과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들은 교실에서 해답에 대해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가 정한 답이니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말에 분노한 아들은 시험지를 책상 위에 내던졌고,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건방지다며 격하게 화를 냈다. 사건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고 교무실까지 이어졌다. 담임 선생님은 중재를 시도하며 아들에게 사과를 권유했지만, 아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선생님은 이미 격분한 상태에서 품행 성적까지 들먹이며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고 말았다.




방과 후, 나는 차로 아들을 마중 나갔다. 이미 담임 선생님한테서 연락을 받았지만, 아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들은 차에 타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시간이 꽤 지난 터라, 그는 차분하게 사건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러고는 이번 일로 인해 품행 성적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 천천히 말했다.


"엄마는 네 마음도, 선생님 마음도 알 것 같아.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의견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충분한 설명도 해주지 않아서 실망스럽고 화도 나겠지. 반대로 선생님 입장에선 매번 시험 뒤에 찾아와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성가시고, 특히 그 과정에서 예의 없는 행동이 보이면 화가 났을 거야.

엄만 네 마음을 이해하니까, 사과할지 말지는 네가 결정해. 선생님께 사과하고 앞으로 예의를 지키겠다고 해서 품행 성적을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뭐, 품행 성적이 좀 나쁘면 어때?"


여기까지 말하고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사 내내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생님과 논쟁을 벌이곤 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 성격인 아들을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선생님도 있는 듯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후자에 해당하는 선생님을 만났기에 논쟁이 잦았고, 그럴 적마다 나는 선생님께 사과를 해야 했다. 반면, 3, 4학년 때의 선생님은 아들의 성향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주셨다. 덕분에 그 시기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반에 공헌했고, 공헌상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는 주로 시험 후 해답을 두고 논쟁이 자주 일어났다. 그럴 때면 아들은 거의 항상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내가 모르는 일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아들들 앞에서 선생님을 절대 낮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부정적인 평가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만들고, 학교 생활을 불편하고 즐겁지 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선생님의 편을 드는 것도 피하려 한다. 나 역시 교사로 일하고 있다 보니, 선생님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선생님께는 일단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다. 선생님들의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무조건 꾸짖지도 않는다. 아들도 나름의 생각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때로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심호흡을 몇 번 하다가도 그마저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초등학생 시절, 작은 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엄마, 심호흡 한 번 하고 들어”라는 말을 서두에 붙였다. 벌이라도 받고 온 날에는 “엄마, 지금부터 하는 이야는 남의 자식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어”라며 시작하곤 했다. 이는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한 표현이었다. 또한 그런 서두는 어떤 이야기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들이 마치 남의 일처럼 자신의 잘못을 조리 있게 설명할 때는, 화를 잠시 잊고 기특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너 또 왜 그랬어?”라는 말로 시작했다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다음 날 차로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아들이 입을 열었다.

“엄마, 오늘 학교 가서 그 선생님 찾아갈게.”

“어, 그래. 파이팅! 우리 아들” 나는 쿨하게 한 마디 했다.

아들이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바로 담임 선생님께 사죄의 글과 아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큰 일을 처리한 듯 홀가분 마음으로 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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