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라는 선물

by 이경보

큰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테니스 코치를 통해 체육반을 알게 된 아들은 그곳에 지망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으로 진로를 정할 것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는데 왜 체육반에 들어가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체육반에 들어가 테니스와 공부를 병행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태도에서 나는 일본 유학을 강행할 때의 내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가 모녀 관계를 끊겠다고 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꿈을 향해 돌진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아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운동이 해로운 것도 아니고, 본인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 보겠다고 하는데 큰 문제가 될까? 중학 시절 이런 체험이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학업에 다소 지장이 생긴다 해도, 인생에 필요한 공부를 위해 감안할 각오가 섰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 중학교는 테니스로 꽤 유명했고,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한 경력이 있었다. 아들은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에 1시간의 체력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2시간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 사실 아들은 테니스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테니스를 접하게 되었고, 단순히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다. 체력적으로 그리 튼튼하지 않은 아들이 체육반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전쟁과도 같았다. 학교 숙제는 매일 산더미처럼 쌓였고, 공부에서 뒤처질까 염려한 그는 학원을 등록하여 여러 과목을 수강했다. 학교 숙제와 학원 과제, 아침 훈련까지 더해져 그는 너무 지쳐 잘 먹지도 못했다.


체육반에는 A조와 B조가 있었다. A조는 선수를 배양하는 그룹이었고, B조는 가볍게 운동을 하는 그룹이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아들이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 우리 부부와 담임 선생님이 B조로 바꿀 것을 권했지만, 아들은 한사코 거부했다. 학원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차로 마중 나가면, 차에 타자마자 쓰러지듯 잠드는 게 일쑤였다. 아들이 머지않아 학교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갈까 봐 나는 늘 불안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아들을 보면서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겠다는 입학할 때의 약속을 1년간 지켜냈다. 처음에는 기특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걱정뿐이었다. 하루하루가 긴장이었고, 피곤한 아들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지쳐갔다.




두 학기가 지나 방학이 되었고, 방학이 끝나면 중2가 되었다. 중2로 올라가기 며칠 전, 학원 수업을 마친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이제 알았어요. 나에게는 운동이 공부보다 더 어렵다는 걸. B조로 옮겨서 공부에 집중할게요. 제가 담임 선생님이랑 코치에게 다 말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은 그 후 정말 B조에서 학업에 집중했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교수님께서 자녀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교수님의 아들이 중학생 때 1년간 등교 거부를 했다는 것이다. 반연간은 방 안에 틀어박혀 어디에도 안 가더니, 반년이 지난 어느 날 방을 뛰쳐나와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조금씩 좋아졌고, 나중에는 학교에도 나갔다고 했다. 부모로서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냐고 물었더니,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찾아다니면서 상담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 둘째 아들을 통해 부모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려주기”라고 하셨다.




기다림은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다림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 보니, 기다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자녀의 문제로 직접 맞닥뜨리면 이성을 잃고 만다. 사랑으로 포장된 그 마음속에는 종종 우리 부모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 부모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을까? 착하게 어른들의 말을 따랐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사춘기 시절 부모님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았다. 하라는 것은 괜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식들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요구가 점점 명령으로 변하고,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좋은 말과 글귀를 보며 살아왔는가? 그 많은 지혜를 삶에 적용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쩌면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자녀에게 한두 번 말하면 바로 알아듣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오늘, 나 여기에서 참회한다. 그리고 사랑으로 포장된 내 욕심이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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