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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7. 2024

꿈의 대학에 입학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연이 우리를 꿈꾸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존 업다이크)


내 꿈은 실현되었다. 도쿄에 도착한 지 1년 후인 1996년 4월, 나는 국립 동경외국어대학교(東京外國語大學)에 입학했다. 그날의 합격자 발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대학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던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얼마나 기뻤던지. 아르바이트로 향하는 길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 눈에 들어오는 나무, 건물, 꽃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온 세상이 내 편인 것 같았고, 모두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듯했다. 이게 행복일까? 그때 느꼈던 희열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고, 마치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성취감에 가슴이 벅찼다. 


간절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나폴레옹 힐)




오랜 세월 꿈꾸고 동경했던 대학이라는 공간에 드디어 발을 디딘 나는 국립 동경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에 입학했다. 일본어학과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마치 꿈만 같았다. 학과에는 외국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있었고, 외국 유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함께 듣는 강의도 있었으며, 유학생들만 따로 받는 강의도 있었다.


입학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일본 문화 관련 필수 과목에서 교수님께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요즘은 고등학교에서도 리포트 과제가 흔하지만, 당시 상고 출신인 내게 리포트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과제가 주어진 그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친하게 지내던 유학생들이 우르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함께 따라갔지만, 어떤 책을 찾아야 할지, 리포트는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는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반 친구들과 비교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 비록 같은 1학년이었지만, 우리는 결코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았고, 여러 측면에서 내 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나는 반 친구들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더 공부하자는 결심을 했다.



당신의 약점들을 직면하고 인정하라.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그것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참을성, 상냥함, 통찰력을 가르치도록 하라. (헬렌켈러)


우리 학과에는 대만 국적의 유학생이 두 명 있었다. 1년간 타이베이에서 지낸 경험이 있어서 나는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친근감을 느꼈다. 그중 한 명은 항상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책을 들여다보니, 모르는 단어 옆에 뜻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의 철저한 예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고, 그와 가까워져서 중국어를 연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타이베이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어 실력이 퇴보되는 것이 아쉬웠던 차에, 같은 과에 대만 친구가 있다는 것이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친구는 훗날 내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자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할 때, 나의 목표는 단 하나, 한계점까지 공부해 보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내 뇌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지점을 '한계점'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한계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으며, 만약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후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공부를 시작한 이상, 그 한계점까지 반드시 도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내려놓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계’라는 것은 내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알 리가 만무했다. 나는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내 한계점이 대학 졸업 지점일지, 아니면 석사학위 이수 단계일지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리고 대학 4년을 보내는 동안에도 내가 동경외국어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해 학위를 받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동경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과에 입학했을 때 외국인 학생이 약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중 한국 유학생들이 꽤 있었으며, 그들은 한국에서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적어도 전문대를 마친 학생들이었으며, 석사 학위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반면,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졸자였다.




내 능력과 가정환경을 포함한 유학 조건이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본 유학 시절을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몸이 아파 학교에 가지 못해도 생존을 위해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가야 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순간적인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루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공부는 꼭 대학 캠퍼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야만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실현하지 못한 대학에 대한 동경과 꿈의 걸림돌로 여겼던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유학생으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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