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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8. 2024

열정 하나로 떠난 일본 유학길

1994년 12월, 나는 일본 도쿄(東京)로 향했다. 당시 25세였던 나는 대만에서의 1년간의 생활이 고향을 떠날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와 친척들은 결혼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내게 맞선 상대를 찾아 인연을 맺어주려 했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뒤로하고 유학의 길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모녀의 인연을 끊겠다며 울부짖었지만,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렇게 나는 그때까지의 일상과 인연들과 작별을 고했다. 아름다운 바다, 신선하고 상쾌한 바다 냄새, 드높은 하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맑은 공기, 훗날 그리워질 줄도 모르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무심하게 제주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




나는 일본이나 일본어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도쿄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고향과 한국이라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었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였더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좋았다. 거창한 꿈이 있어서 유학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 갈망이 너무 깊고 커서 유학 생활에 대한 불안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핍이 주는 힘은 실로 막강하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가족도 없었고, 손에 쥔 돈도 거의 없는 상태로 나는 도쿄에 발을 디뎠다. 구체적인 생활 계획조차 없이, 20대 중반의 시골 아가씨가 일본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서 오직 공부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유학을 결행한 것이다. 만약 내가 계획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며 모았던 돈은 이미 대만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로 모두 소진된 상태였다.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존 포겔)




나는 먼저 도쿄에서 일본어학교에 들어갔다. 일본어는 전부터 해왔던 공부였지만,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거의 중단해 있었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대입 준비도 해야 했다. 일본어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어학교는 반나절만 수업이 있어서 방과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말에는 거의 하루종일 일했다. 첫 번째로 한 아르바이트는 ‘오코노미야끼(お好み焼き)’ 가게다. 


‘오코노미야끼’는 야채, 고기, 해산물 등의 재료를 밀가루 반죽에 섞어서 철판 위에서 굽고 일본 특유의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려 먹는 부침개라고 할 수 있다. 모자가 경영하는 가게로, 여 사장님은 한국 2세 교포여서 그런지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평일에는 4-5시간 정도 일했다. ‘오코노미야끼’ 가게에는 양배추를 대량으로 사용하는데 그것을 칼로 채 썰어야 했다. 손님들이 많은 주말에 하루 종일 일하면서 장시간 양배추를 썰고 나면 그다음 날에는 손의 감각이 둔해졌다.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손과 손가락의 감각이 둔해지면 글을 써도 무슨 글을 쓰는지 알지 못한다. 


사장님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던 내게 건강식품을 건네주시며 배려해 주셨다. 방과 후 아르바이트 시간 전까지 가게 근처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걸 아시고는, 커피값을 아끼라며 가게에서 파는 우롱차 한 잔을 내주시며 가게 안쪽 테이블에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아르바이트비도 일본인 직원들보다 더 챙겨주셨는데, 일 잘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해주셨지만, 사실 나를 돕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외국에서 와서 일하며 공부하는 내 모습이 사장님 눈에는 기특하게 보였던 것 같다.. 




대학 입시 과목은 대학교마다 다르고, 내가 들어가고 싶은 국립대는 일본어, 일본어 논술, 일본 역사, 외국어였다. 일본어와 일본어 논술은 일본어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지만, 역사는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다. 중학교 역사 참고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원래 역사 과목을 싫어한 데다, 일본어로 일본 역사를 공부해야 해서 힘들었다. 난생처음 역사 공부를 열심히 공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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