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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7. 2024

고향을 떠나, 대만으로

1993년 겨울에 나는 대만 땅을 디뎠다. 대만의 겨울은 매우 외로웠다. 대만에 가서 1달 정도 지났을까, 명절이 되었다. 명절이 되자, 학교와 학교 도서관이 쉬고, 식당들도 2주 정도 문을 닫았다. 막 대만에 간 나는 명절에 갈 곳도 없었고, 식당들이 문을 닫아 먹을 데도 없었다. 물론 만날 친구도 없었다. 밖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무척 외로웠다는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대만사범대학 어학당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어 수업은 5-8명으로 구성한 소규모 반으로 인원수에 맞는 작은 교실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다. 오전에는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월세방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다 빌었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알바는 일식집이었다. 일본어를 좀 한다고 해서 시급을 다른 대만인보다 좀 많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어가 잘 안 되어 일본 손님들과 직원들 사이에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나를 자르지 않고 써 주셨다. 그 가게가 문을 닫기 전까지 말이다. 




아르바이트비에 가져간 돈으로 방 월세값, 학비, 식비 등의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루에 내가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은 대만돈 100원(현재 환율로 한국돈 4000원 정도)이었다. 아침은 빵 15원 정도, 점심은 학교 구내식당에서 40원 정도 쓰고 남은 금액으로 근처의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침이나 점심에 돈을 더 써버리면 저녁은 간단한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학교 구내식당은 밖의 식당들보다 양도 많고 쌌다. 그래서 점심 한 끼는 학교에서 배를 든든히 채웠다. 그렇게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 나가면 대만에서 내 꿈인 대학 진학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반년쯤 지날 무렵에 그 일식집 가게가 문을 닫게 되면서 나는 귀중한 알바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때가 대만에서 9개월쯤 지난 때였다. 




대만은 물가가 한국보다 싸지만 임금도 낮다.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 수업료를 충당하고 생활하기에 어렵다는 현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회사 다니면서 월급에서 조금씩 모여서 가져간 내 전재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대만에 온 목적은 어학연수가 아니고, 대학 진학이었다. 어학연수는 어디까지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전 과정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 힘으로 대학 다니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안 지금 나는 인생 설계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어를 좀 할 줄 아는 일본으로 인생 여정을 틀었다.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때까지 안경 없이 지냈던 내가 시력이 뚝 떨어져 안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온몸이 가려웠고, 피부에서 하얀 각질이 떨어졌다. 피부과에서는 물과 공기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진단했다.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제주에서 자란 내 몸이, 그때 지하철도 없고 매연으로 가득했던 타이베이의 공기에 적응하지 못해 반응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나는 '대만은 나와 맞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결국 약 1년간의 대만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 유학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숙명이라 불리는, 내게 주어진 환경은 결국 내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결핍으로 다가왔다. 그 결핍 속에서 내 갈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커져만 갔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에 맞서 싸울 힘도, 능력도 없었던 나는 그저 순응하며 지냈다. 그 시절은 마치 내 인생 드라마에서 엑스트라나 조연으로 살아간 시간들처럼 느껴졌다.


우리 삶에는 선택할 수 없는 숙명적인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비록 불공평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이후의 삶은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인생의 불공평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듯, 나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 발을 내디뎠고, 그 첫걸음은 대만이었다. 나를 이루고 있던 낡은 세포들을 새롭게 교체하기 위해, 익숙해진 고향을 떠나는 것이 필수였다. 그때의 제주는 나에게 더 이상 아름다운 자연과 푸른 바다, 맑은 하늘의 섬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저명한 연예인들도 과거에 엑스트라와 조연 역할을 했던 시절이 있었듯, 나 역시 오랜 시간 엑스트라와 조연으로 살아오며 워밍업을 해왔다. 이제야 비로소 그 모든 과정이 주연 역할을 맡기 위한 준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엑스트라와 조연으로 쌓아온 경험들은 주연에 대한 갈망을 키우는 원동력이자, 그 갈망을 이루기 위한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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