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보 Sep 07. 2024

홀연히 나타난 귀인

퇴근 후에 일본어학원에서 일본어 공부를 했다. 제주는 예나 지금이나 국내외적으로 관광지였고, 1990년대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 대만, 중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왔으며, 그중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외국어 특히 일본어 하나만 잘해두면 제주에서 취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열심히 준비한 결과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대사관에 직접 받으러 갔을 때, 그곳 담당자가 내게 제주대학교 일문학과 학생인지 물어봤고, 제주 응시자 중에서 제일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뿌듯하고 기뻤다.  1급 자격증을 따게 되니까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인 전용 토산품 가게에 들어갔다. 이 가게는 제주 특산품을 비롯해 인삼, 보석 등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곳으로, 면세점보다 취급하는 상품 규모가 작은 가게였다. 당시 제주에는 그런 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1990년대,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으로 일본인이 가장 많았으나, 한국과 대만 간의 경제 교류와 관광이 활발해진 시기라서 한국을 방문하는 대만 관광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제주를 방문하는 대만 관광객의 수 역시 점차 늘고 있었다. 그런데 20여 명의 직원들이 일본어만 할 줄 알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은 나보고 학원비 일부를 지원해 줄 테니 중국어를 공부하라고 했다.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중국어학원에 다니며 중국어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학원을 다니면서 누군가로부터 향후 중국어 시대가 오니까 중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중국어 공부를 한 지 3,4개월이 지나던 어느 날, 대만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본 관광객과 대만 관광객이 선호하는 상품이 달라서, 진열 상품들을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입사원으로서 가격대가 낮은 상품 코너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날도 가게는 대만 관광객으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가격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와 중에 3명의 신사분이 내게로 다가왔다. 두 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다른 한 분은 40대 정도로 보였다. 40대로 보이는 분은 일본어를 좀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어와 짧은 중국어를 섞어가며 그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그들은 쇼핑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나눴던 얘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주변 상사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그분들에게 상품을 권했고, 그분들은 성의상 좀 사는 듯했다. 




그 세 분은 내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숙소를 알려주었고, 그들은 친구 사이라고 했다. 내일 제주를 떠나는데, 오늘 밤 숙소 근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명함을 보니 한 분은 변호사였고, 나머지 두 분은 검사였다. 


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과의 만남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채근담) 


제주의 호텔들은 해변을 배경으로 지어진 곳이 많다. 그분들이 머무는 호텔도 그런 곳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날 밤 우리 네 사람은 커피숍도 아닌, 사람들로 붐비는 바다가 보이는 도로변에 서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나는 그분들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을 떠나 대만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들 만나기 전까지 대만에서 어학연수를 밟고 거기서 유학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 잠재의식이 발동한 듯,  순식간에 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이야기였다. 내 잠재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던 의식, 갈망은 내게 다가온 한가닥의 불빛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간절함이 그분들에게 전달된 듯, 그분들이 대만에 돌아간 후 머지않아 내게 유학 자료를 보내왔다. 타이베이에 있는 사범대학 어학당의 입학 원서와 어학당의 소개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지 않아, 해외 어학연수 알선은 유료로 외국어학원에서 이루어졌고, 선택의 폭도 좁았다.


행위에 간절함과 진실이 담긴다면, 그것은 곧 바라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절실하게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라, 163쪽)




그 세 분의 출현은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라는 울타리 안에 묶여 있던 고삐를 풀어준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장에서 처음 만난 손님들이 아무리 신사적으로 보였더라도 혼자서 그들과 만난 것도 신기하고, 게다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나답지 않은 행동처럼 느껴진다. 내향적인 내가 한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6개월간 근무한 토산품 가게를 그만두고 대만으로 갔다. 당시 내 나이 24살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결정이라고 믿는다. (토니 로빈스)







이전 01화 이루지 못한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