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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8. 2024

박사 논문 집필과 육아의 병행

박사 과정 3년째에 논문 집필에 들어갔다. 연구 주제는 일본어 문법 관련 주제이며, 석사 학위 주제의 후속 연구이기에 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기숙사에 살면서 로터리클럽 장학금(월 150,000엔)을 받으니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논문 집필과 육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사 논문은 몰입 없이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몰입하다 보면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기가 있어서 자동적으로 브레이크가 밟히곤 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5개월쯤부터 보육원에 보냈다. 보육원은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운영된다. 보육원에 맡긴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기를 보육원에 맡기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집에서 커피를 한 잔 여유롭게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우는 아기를 뒤로 하고 보육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첫날은 오전만 맡겼는데, 오전 내내 나는 집안 대청소를 하였다.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기는 보육원을 다니며 무척 건강하게 자랐다. 뭐든 잘 먹어 줘서 3개월쯤 될 무렵에는 살이 많이 쪘다. 사랑하는 아들을 매일 안고 업는 일이 내 체력으로는 버거워졌고, 손목에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기의 무게가 팔에 부담이 되고 논문 집필로 인한 수면 부족이 통증을 악화시켰다. 전기 치료, 침 등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지만 효과가 거의 없다. 병원에서는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쉬지 못한 것이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통증이 처음에는 손목에서 시작하여 일본을 떠날 때에는 팔 전체와 상반신 오른쪽이 염증처럼 아프다. 조금만 움직여도 심한 통증이 따른다. 도쿄의 전차는 출퇴근 시간에 늘 만원이라, 전차 타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사람들이 살짝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비명이 절로 나오는 통증이 있었다. 어깨부터 손까지 붕대를 감고 지내며 손을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붕대를 감은 채로 컴퓨터 키보드를 치곤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학위 취득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라, 몰입 그 자체였다. 팔이 아프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연구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다. 


논문 초안을 3월에 제출했는데, 그 해 1, 2월은 우리 아이에게 태어나서 첫겨울이었다. 일본 보육원은 아이에게 조금만 열이 있어도 맡길 수 없어서 2월 한 달 동안은 7일밖에 보육원에 맡기지 못했다. 감기에 걸리기 때문이다. 아기를 직접 돌보면서 논문을 마무리해야 한다. 나의 수면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아침 5시쯤 아기가 배고파 울어대었다. 남편은 우는 아이를 안고, 나는 우유를 타러 가는데 빈 병의 플라스틱 우유병을 들 수 없어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나왔다. 자는 동안 팔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 팔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논문 초안이 완성되고 최종적으로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러 연구실을 찾았다. 초안 원고는 이미 우편으로 보낸 상황이었고,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꼼꼼히 읽어주시고 코멘트를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볼펜을 잡고 코멘트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구두로 코멘트를 말씀하시며 직접 메모해 주셨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박사 논문 제출 당일, 논문을 담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하지만 내 팔로는 내려놓을 수 없어 교무과 직원이 내 가방에서 논문을 꺼내주었다. 논문을 제출한 후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 속 소파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몸 상반신이 완전히 쓰러져 누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보통 야간에 술 취한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옆에 앉아 있는 일본 사람이 자꾸 일본어로 ‘괜찮냐’고 묻는다. 그에게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입을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3월에 논문을 제출하고 기숙사 계약 만료에 따라 남편을 따라 대만으로 갔다. 지도교수님은 구두 심사 일정을 서둘러 잡아주시려고 했지만, 내 몸 상태가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갈 형편이 안 되어 심사 일정을 뒤로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2006년 7월에 구두 심사가 이루어졌다.


나는 선택과 몰입을 통해 임신과 육아를 하면서 3년 안에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학위 취득의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했다. 아쉽게도 유학 생활 마지막 한 해는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달콤했던 유학 생활의 시간들이 많이 지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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