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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8. 2024

새 생명의 탄생


뱃속의 생명을 떠나보내고 1년 후,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생명이 다가왔다. 아픔 뒤에 찾아온 소중한 생명이었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박사 과정 1학년 때 임신을 했고, 2학년 때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9월에 아이를 낳았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신이 나서 아기 용품들을 준비했다. 남편은 아기 맞이할 물건들을 사서 세탁하고, 병원에 와서 아기를 보며 너무 기뻐 날개가 없다는 이유로 날지 못할 뿐인 듯 보였다.


아기는 출산일 바로 전에 탯줄이 목에 감겨서 태어날 때 얼굴과 몸이 거무스레했지만, 남편은 그런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웠는지 그 사진을 주변 지인들과 교수님들께 보여줄 정도로 기뻐했다.




일본의 2학기가 10월 초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9월 8일 출산 후 한 달간 쉬고 학교로 돌아갔는데, 지금 돌아보면 너무 무리였다. 교수님들은 나에게 충분히 회복한 후에 복귀하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10월 초에 바로 강의에 들어갔다. 어른들이 출산 후에는 반드시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나는 그 진리를 무시한 결과,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며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쓰러지듯 잠들곤 했다.


어느 날 너무 힘들다고 조선어학과의 한국인 교수님께 고백했다. 한밤중에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 너무 고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경보 씨,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쓴다고 해도 그 논문을 누가 열심히 읽어줄까요? 하지만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는 평생 우리 곁에 있어 줄 보람 있는 존재잖아요.”


두 아이의 엄마인 교수님의 그 말씀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유학 시절,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는 유학생들 중에는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경우가 많아 결혼 후 임신을 경험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출산 후 휴학을 선택했지만, 육아가 1~2년으로 끝나지 않다 보니 복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선후배들의 경험을 보아왔기에 나는 휴학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힘들어도 1학기만 더 버티면 학점을 다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정어머니가 3개월간 아기를 봐주기 위해 일본에 오셨지만, 어머니도 연세가 있으셔서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뱃속에 있는 생명을 별나라로 보내고  1년이 지난 후에 새 생명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다. 아픔 뒤에 찾아온 새 생명이라 우리 부부에게 그 기쁨이 배로 다가왔다. 박사 1학년에 임신하고 2학년에 출산했다. 예정일 보다 3주 앞당겨진 9월에 출산했다. 3주 앞당겨 출산한 바람에 아기를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출산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3-4일간 남편은 아기 용품들을 준비했다. 남편은 신바람이 나 있었다. 낮에는 아기를 맞이할 용품들을 구매해 와서 세탁하고, 저녁에는 병원에 와서 아기를 봤다. 그는 마치 날개가 없어 못날 정도로 기뻐했다. 아기는 태어나기 바로 전에 탯줄이 목에 감겨서 태어났을 때, 혈액순환이 잘 되어 얼굴이며 몸이 거무스레했다. 솔직히 말해, 엄마인 내가 봐도 갓 태어난 아기는 거무스레하고 예쁘지 않았는데 남편은 그 사진을 지인이며 교수님들에게 보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토록 그는 기뻐했다.




일본의 제2학기는 10월 초에 시작되어서 나는 9월 8일에 출산하고 한 달 정도 쉬고 학교로 복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리였는데, 그때는 왜 그리 필사적이었는지 모른다. 여러 교수님들이 충분히 휴양한 후에 강의에 들어오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나는 10월 초부터 강의에 들어갔다. 출산 후 잘 쉬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진리였다. 나는 그런 진리를 무시한 결과 정말 몸이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펴고 쓰러지듯 책상에 엎드려 자곤 했다. 




하루는 조선어학과의 한국 교수님에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한밤 중에 일어나 젖을 먹이고 아기를 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더니 그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경보 씨,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쓴다고 해도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읽어주겠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잘 키워내면 평생 우리 곁에 있어줄 애들이잖아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에요.”

두 아이의 엄마인 교수님의 그 말씀은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유학 시절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유학생들이 꽤 있다. 석사, 박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들의 나이가 20대 후반, 30대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혼을 한 유학생 중에는 임신하는 경우가 있었다. 임신하고 출산한 선후배들 중에는 휴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육아를 하면서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고, 가계도 꾸려나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휴학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휴학한 선후배들이 예정 대로 학교로 복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육아가 1,2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그럴 것이다. 그런 선후배들을 주위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휴학만큼은 선택하기 싫었다. 그리고 1학기만 어떻게 더 버티면 박사 과정의 학점을 다 취득할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도 아기를 봐주러 일본에 오셔서 3개월 정도 봐주셨다. 어머니는 연세도 있으셔서 아기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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