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일자리 찾기

-일문학과의 조교수

by 이경보

문전박대

내 전공은 일본어 문법이다. 그래서 대만 남부 지역에 있는 일본어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의 일자리를 찾았다. 남부 지역으로 한정한 것은 남편 고향이 가오슝이어서 가능하면 가오슝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수 채용 모집 광고가 나와 있는 학과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몇 군데를 다녔다.


면접 자리에서 나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테스트받아야 했다. 일본어는 일본에서 11년간 연마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중국어였다. 전임 교수는 행정일도 처리해야 하고 학생 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어가 안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서툰 중국어로 열심히 어필했지만 면접 위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면접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곤란하다는 말을 하는 학교도 있었고, 면접 분위기는 괜찮았으나 결과적으로 채용할 수 없다고 하는 학교도 있었다. 한국인인 내가 이곳 대만에서 일본어학과의 전임교수로 채용되기는 어려웠다. 그중 한 학교는 일문학과 학과장이 내게 호감을 가지고 학과 교수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문전박대라는 현실 앞에 난감했다.



조교수로 임용


몇 번의 면접을 보고 희소식이 없던 터라, 나는 대만의 인력은행(人力銀行)이라는 사이트에 내 자료를 올렸다. 인력은행은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해 주는 취업 정보 제공 사이트로서 대만에서 가장 큰 구인구직 포털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사이트에 내 이력서를 올려두었다. 운이 좋게도 한 사립대의 학부장님이 내 자료를 봤고 그 학부장한테서 직접 전화가 왔다. 자신이 소속한 학교에서 전임교수를 모집하고 있으니 이력서를 내고 응모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학위를 받고 반년 후에 대만 남부 지역에 있는 사립대에 취직이 되었다.


응용외국어학과의 일본어 전공과의 조교수로 임명된 것이다. 실로 행운이었다. 일본에서 박사반에 있을 때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대만에 가면 일본어 전공의 한국인인 터라 전임자리는 힘들 것이고, 시간 강사나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터라, 전임 자리는 감지덕지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사립대에서는 내 출신학교를 높게 평가해 주어 특별 대우까지 해주었다.




언어의 장벽


한국인인 내가 이곳 대만에서 일본어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당시 나는 중국어를 일상회화 정도로 생계에 필요한 표현을 구사할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공부할 때를 더듬으며 대만 학생들에게 직접 교수법으로 전부 일본어를 써서 강의를 진행했고 아주 부분적으로만 중국어를 섞어서 진행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당연히 썰렁했다. 학기가 끝날 무렵에 시행하는 교수평가에 학생들은 내가 하는 일본어도 중국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진솔한 의견들이 나왔고,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전임이라 행정일도 해내야 했다. 내 앞으로 매일 날아오는 이메일은 100% 중국어였다. 당시의 중국어 실력으로 메일 내용을 전부 이해하려면 이메일만 붙잡고 하루 종일 꼬박 걸릴 분량이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날아오는 이메일 수는 5,60 통이었는데, 그중에는 나와 상관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 판가름 자체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루는 강의며 회의가 빽빽이 짜여 있어서 메일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 5,60통의 이메일을 전부 프린트아웃해서 집에 가져가 남편에게 보였더니, 나와 상관없는 내용까지 전부 갖고 왔냐고 나무랐다. 메일 내용 파악이 잘 안 되어 중요한 안건들이 처리 마감일 후에 확인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메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겨났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려고 하면 두통이 시작되곤 했다.


교수 회의도 힘들었다. 내가 소속한 학과는 응용외국어학과로서 일본어 전공 외에 영어 전공이 있었고, 당시 학과장은 영어 전공의 교수로서 미국에 매우 오래 체류했던 분이어서 중국어보다 영어가 유창했다. 그래서 회의는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되었다. 교수 회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준비된 도시락을 먹는 일 밖에 없었다. 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몇몇 동료 교수들이 노력하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나는 경험이 풍부한 동료 교수들의 강의를 참관하며 배웠다. 특히 원어민인 일본 교수 강의를 참관하며,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내 강의에 활용했으며, 지도상 어려운 점이 있으면 선배 교수들의 의견을 물었다. 지금도 그때의 선배 교수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3년간 그 학과에서 근무하면서 제대로 한 일이 없어서 참 미안하기 그지없다.

keyword
이전 02화대만에 막 왔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