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영 불편했다.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서툴고 긴장하기 쉬운 스타일이라, 그 불편한 감정이 오래 나를 붙들었다. 또한, 대만의 대학 문화에 대한 낯섦과 내 입을 통해 나간 부자연스러운 중국어가 반사되어 내 귀에 들어올 때의 거부감도 더해졌다. 대만인인 남편을 따라 대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시작한 대학 교수직은 내게 실로 버거웠고, 그것을 소화해 내 삶에 녹아들게 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2007년에 대만의 대학 강단에 섰던 나는 어느덧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만에 온 초기 3년은 일본어 전임 교수로, 이후에는 한국어 전임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임 교수의 일로는 크게 연구, 강의, 학생 관리, 행정이 있다. 교수들마다 능력이 달라 저마다 특출하게 발휘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다. 이 네 분야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교수도 있긴 하지만, 주로 한두 개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낸다고 자부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음에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하나를 꼬집어야 한다면, 학생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학생 관리는 번거로우면서도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일로, 일반 회사원들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상담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종종 내 20대 시절이 떠오른다. 나 역시 그랬다. 직면한 문제가 너무 심각하게 느껴지던 나이였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시절이다. 혹자는 청춘을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말하지만, 내 청춘은 불만과 잡념,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비슷한 마음으로 교실에 앉아 있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면, 학생들의 모습이 내 과거처럼 느껴진다.
교수라는 일
교수직은 언제나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과거의 실패와 좌절, 도전과 아픔, 그리고 성취들이 내 앞에 있는 청춘들에게 격려와 공감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시에 적절하게 이 경험들을 꺼내어 쓰면,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잊혀 가는 지난날의 나를 되살려 주기에 겸허함을 되찾고, 그 경험들을 다시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감사와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젊은 시절의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내 자식들이며, 인생의 후배들이자 배움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 과거의 아픔들이 각기 어떤 이유로 나에게 찾아왔던 것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인생의 후배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살피기 위한 사전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네 인생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소수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행운아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다. 초창기에는 버겁기 그지없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언제부터인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아졌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닙니다. 행복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면, 성공할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한국어 교수로 전환한 초기에는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본어 문법이 본래 전공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매 순간이 곧 나에게도 새로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한국어 문법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자 임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것만이 내 임무를 다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도우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점차 내 강의와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어,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그들과 동행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좀 더 자신을 탐구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도우미가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