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둘째 임신

by 이경보

일문학과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둘째를 갖게 되었다. 팔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대학 교수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 와중에 새 생명이 찾아든 것이었다. 첫째 때보다 입덧이 더 심했고, 이는 아마도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상황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입덧이 극심해지면서 세상에 이렇게 많은 냄새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음식 냄새 때문에 식당이나 주방 근처에도 갈 수 없었고, 커피 냄새로 인해 커피숍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매연 냄새 때문에 길거리에 나서기조차 두려웠다.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에게서 풍기는 머리 냄새나 양치질을 하지 않은 듯한 입 냄새까지, 모든 냄새가 나를 괴롭혔다.


마치 내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방 밖을 나가기가 두려워졌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한바탕 토하고,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또 토해냈다. 문득문득 개운한 한국 음식이 뇌리를 맴돌 때도 있었지만, 여기에서 만들어 줄 사람도, 사다 줄 사람도 없었다. 설령 사 온다고 해도 먹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마치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워졌고,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서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겨우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 토하곤 했다. 가끔씩 개운한 한국 음식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만들어 줄 사람도, 사다 줄 사람도 없었다. 설령 구할 수 있다 해도 먹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출산 후 약 2개월 만에 학교로 복귀했다. 낮에는 같이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아기를 돌봐주셨고, 밤에는 제가 직접 아기를 재우며 함께 지냈다. 아기를 재우고 나면 강의 준비에 몰두해야 했다.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가르칠 사용할 중국어도 미리 준비해야 했기에,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내 체력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학교까지는 운전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렸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졸음을 쫓기 위해 사탕을 입에 물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몇 번이나 졸음 때문에 고속도로 차선을 넘어갔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기적이자 신의 보호 덕분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학교에서 강의실로 가기 위해 한 층의 계단을 내리고 오르는 데 다리가 후들거려 계단 난간을 짚어야 했다. 둘째가 4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죽으려고 애를 둘씩이나 낳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나날이었다.


대만에 와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립대에서의 3년 동안 제대로 일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마음 깊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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