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나는 기억을 고의로 묻은 자다
냄비를 태웠다
저녁은 사라지고
검은 연기, 어설픈 나의 변명
그을음이 벽을 타고 오를 때
나는 죄 대신 웃음을 꺼냈다
망각은
신이 내린 선물
“깜빡했어요”에
책임은 허공에 녹았다
아이도, 어른도
눈 감고 한 모금씩
습관처럼 깜빡을 삼켰다
약속을 놓친 날,
당신 이름이 안 떠오른 순간
치매는 벽이지만
깜빡은 창문이었다
나는 그 너머로 몸을 숨겼다
빛이 날 부른 게 아니라
나는 스스로를 지웠다
기억은 타버렸고
다시 밥을 지었다
들러붙은 말들을 삼키며
하루를 견뎠다
세상은 분주했고, 깜빡할수록
나는 점점 투명해졌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