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by 수정

부산에 사는 남동생의 몇 달만의 전화였다.

이 아침에 무슨 일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은 나와 달리

동생은 먹거리는 목소리로 제대로 말의 시작도 못 꺼냈다.

그 몇 초간 엄마가 잘 못 됐다는 걸 직감했다.


엄마가 자살시도를 했고 지금 동아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다며 올 수 있냐는 말에 신기하게도 여태껏 살면서 가장 짧은 속도로 눈물이 차올랐다.


제일 먼저 떠 오른 건 동생에게 대한 미안함이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엄마를 난 동생에게 맡기고 20살이 된 직후부터 부산을 떠나 결혼을 구실 삼아 대전까지 떠나 있었다.


동생은 나보다 더 딸 같은 역할하던 아이니까 하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룬 거지 하며 합리화하던 나의 기저에는 이런 일을 네가 감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네가 침착해야 해 어서 갈 테니까 조금만 정신 붙잡고 있어

동생을 위로하지 못하고 내가 처음 건네었던 말은 아직까지 후회한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내려가는 내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모두를 후회했다.

내가 엄마 편이 되어줄 걸

엄마는 괜찮은지 물어볼 걸

엄마를 조금 더 설득해볼 걸

옆에 살면서 조금만 더 이해해 볼 걸

엄마를 견디지 못한 아빠도 원망했다.



4시간을 달려온 병원입구에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동생과 바통터치를 하고 병원 침대 옆에 앉아 엄마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짐 챙기러 집으로 가던 동생이 전화가 와서 침대 밑에 놓인 종이백에 담긴 3장 분량의 엄마의 유서가 있으니 필요하면 의사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동생 말에 따르면 현장에 왔던 구급대원이 유서를 가지고 의사에게 보여주면 진료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챙겨 왔다고 했다. 그래서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정신과 병동이 잘 갖춰진 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유서였지만 열어봐야 했고

난 새벽이 되어서야 볼 용기가 생겨 나는 종이백을 챙겨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분주한 밝은 곳을 피해 깜깜한 병원 본관 1층 로비 원무과 앞에 한 줄에 5명씩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았다.


멀리서 기다란 수액걸이대를 끌고 산책하듯 오가는 두 세 사람 사람 말고는 그 넓은 공간에 나 혼자 있어 긴장감이 적당했다.


그리고 유서를 읽어 내려갔다.


엄마의 유서에는 검정색 컴퓨터사인펜으로 미안하다는 짧은 말과 지금 집은 싸게 팔고 전기세 지로 끊는 법, 통장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돈이 있고 비밀번호를 통장 하단에 적어뒀다는 말과 외할머니를 위로해달라 그게 다였다.



유서를 읽고 처음엔 화가 났다.

무엇이 이런 선택까지 하게 했는지

엄마의 마음이 어떻게 썩어갔는지

나와 동생, 아빠에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썼을까

참나 왜 난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가 이해가 안 되지







30분가량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나서야 알 거 같았다.


엄마의 죽음에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닐까

우리에겐 어떤 의문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내려오면서 후회했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은

엄마는 우리에게 아무 기대도 할 수 없었던 거 아닐까

자기가 사라져도 우리가 슬퍼나 할까 불안해하며 마지막까지 자기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래서 다 숨기고 담담하게 써내려 갔지 않았을까

불쌍한 사람




난 꼭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병원 의자에 앉아 음료자판기 조명이 살짝 닿는 곳에서 한참을 고개 숙여 울었다.


엄마가 살아났음에도 난 엄마를 모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미친 듯이 미안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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