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이 동시에
"다음 주, 학교에서 벚꽃 축제를 한다는데, 벚꽃이 하나도 안 피었어."
"이러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되는 것 아닌가?"
지난주 금요일 저녁, 가족들과 산책을 했다.
대전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이 걱정을 한다.
"요즘 날씨가 쌀쌀해 늦어지는 것 같은데, 주말에 날이 풀리면 갑자기 필 수도 있어"
작년에 처음으로 진해 군항제에 벚꽃 구경을 갔다.
그때도 벚꽃이 예상보다 늦게 피어,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아쉬워했었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은 모두 단잠을 자고 있다.
혼자 운동을 할까, 산책을 할까 고민하다, 아파트 주변 산책에 나섰다.
3월이 다 가고 곧 4월인데, 봄 날씨치고는 쌀쌀하다.
요즘 주중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종시 보다 기온이 낮고, 봄꽃 소식도 전혀 없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데, 햇볕이 잘 쪼이는 곳에 하얀 꽃이 피어 있다.
매화인가?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아니다. 벚꽃이다.
딸아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 ~~~ 벚꽃이 이렇게 활짝 피었는데, 왜 모르고 있었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곳은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다.
이 나무 하나만, 아파트가 찬 바람을 막아주고, 따듯한 봄볕을 쪼이면서, 꽃을 피웠나 보다.
내친김에 아파트 주변을 돌며, 우리 동네에 있는 봄꽃들을 살펴보았다.
"산수유 꽃에,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에 벚꽃까지 ~~~"
거의 모든 봄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봄꽃 나무가 있다는 것도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봄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데, 모두 동시에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봄꽃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를 찾아보았다.
(동백) - 산수유 - 매화 - 목련 - 개나리 - 진달래 - 벚꽃 - (철쭉) 순으로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무려 6종의 봄꽃이 동시에 꽃을 피웠다.
봄꽃마다, 피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과거에는 이 순서가 아주 명확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래서, "꽃이 피는 순서"를 일컫는 말, "춘서(春序)"라는 용어도 있다.
<춘서(春序) - 봄꽃이 피는 순서>
산수유 - 3월 초
매화 - 3월 초
목련/개나리/진달래 - 3월 중
벚꽃 - 3월 말, 4월 초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1980년에는 개나리가 피고 나서, 한 달 후에 벚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후 이 간격이 점점 좁혀져 왔고, 2010년 이후부터는 일주일 간격으로 좁혀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의미로, "봄과 관련된 서예나 글귀"를 "춘서(春書)"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봄이 오면, 자연의 변화에 희망을 담아 시를 짓고, 글을 남기곤 했다.
춘서(春書)는 "봄의 희망을 담은 예술적 표현"이었다.
"매화는 눈 속에서도 피어나니, 봄의 전령이라 하겠네."
조선시대 선비들은 봄꽃을 보며, 이런 시를 읊었다.
그런데 이젠 봄꽃들이 피는 시기가 변하면서, 이런 춘서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설마 했던 꽃소식, 어느새 내 앞에 피었구나."
꽃이 피는 시기가 바뀌면서, 춘서의 내용도 변하고 있단다.
"다양한 봄꽃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화사하고 좋네."
여러 종류의 봄꽃을 동시에 보니 좋기는 한데, 한편 걱정도 된다.
"자연의 섭리와 순서가 다 무너지는 것 아닌가?"
"기후변화가 문제라는데, 봄꽃 서열도 무너지면, 기상이변도 커지는 걸까?"
화사한 봄날에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우선은 눈앞에 와 있는 "봄의 기운"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