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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2만 원짜리 가짜금반지를 선물했더니

by 수달


"아무래도, 어머니께 금반지를 새로 해드려야겠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둘째 형님이 형제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치매이신 어머니가 금반지를 잃어버렸다.

어디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기억을 못 하신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동네 커피숍에 반지를 맡겼다고 한다. 그 집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는데, 수시로 거피숍에 들러, 반지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신다. 그러지 마시라고, 말리는 작은형과 논쟁하다, 집을 나가겠다고 말다툼까지 하셨다.

(지난 글, "91세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답니다.")



한바탕 소동 후에도, 복지센터 다녀오는 길에 수시로 커피숍을 들르신다.

한 번은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경찰관이 현장 출동까지 했다. 작은형이 불려 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다. 경찰관은 이해하고 돌아갔는데, 어머니는 막무가내다. 형이 어머니에게 언성을 높이면, 다시는 안 가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그런데 다음날, 집에 아무도 없으면, 또 커피숍엘 가신단다.


한 달 동안 실랑이 하던 작은 형이 형제들에게 제안을 했다.


잃어버린 반지 대신, 새로운 금반지를 사드리자고 한다.





2만 원짜리 금반지


새로 금반지를 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어머니가 치매 때문에 또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전에 가지고 계신 금반지는 2돈이 넘는 쌍 금가락지였다.

요즘 금 값이 올라, 똑같은 금반지를 새로 하려면, 16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온라인 쇼핑몰에 보니, 다양한 가짜 금반지를 판매하고 있다.

금을 도금한 쌍가락지를 2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진품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좋아 보인다.


가짜 금반지를 하면, 설령 잃어버린다 해도, 부담이 없다. 작은형에게 제안했더니 좋다고 한다. 문제는 어머니 손가락 사이즈를 모른다. 혹시 누나가 알까 물어보았다.


"엄마 손가락 사이즈는 11호 정도를 하면 될 거야."



역시 이런 걸 보아도, 딸이 최고다. 아들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다 알고 있다.

바로 주문했다. 이틀 후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받았다고, 2만 원짜리 가짜 금반지 쌍가락지를....




2만 원 가짜 금반지(왼쪽)와 160만 원 금반지(오른쪽)






큰아들? 막내아들?


가짜 금반지를 보내드린 다음 주, 서울로 출장 가는 길에 어머니와 작은 형님을 만났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돼지갈비'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요즘 어머니 혈색이 좋아 보이시네요."


"네가 보내온 금반지를 받고, 너무 좋아하셔"

"요즘엔 커피숍에도 안 가고, 안색도 많이 좋아지셨어."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 하고 계신 금반지는 어디서 난 거예요?"

"이 반지, 큰 아들이 선물해 준 거야. 지난번에 갖고 있던 금반지를 잃어버렸거든."


"네~~~? 큰 형이요? 어머니, 아니에요. 이 반지는 제가 선물한 거예요."

"반지 잃어버리고 속상해하신다길래요. 이제 다시는 커피숍에 찾아가지 마세요. 아셨죠?"


"그래? 나는 큰아들이 준 걸로 알았는데, 막내가 준거였구나, 알았다. 이제 다시 커피숍엔 안 갈게"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다음 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선물 받은 반지는 잘하고 계신가요?"

"그럼, 잘하고 있지, 너희 큰형이 나 반지 잃어버렸다고, 새로 금반지를 해 주었단다."


순간 깜짝 놀랐다.

이건 뭐지? 분명히 어제 큰형이 아니라, 막내아들이 선물한 반지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걸 기억을 못 하신다.


"어머니, 그 반지는 큰형이 아니라, 막내아들인 제가 선물한 거예요."

"어찌 되었든 이제는 다시 커피숍에는 가지 마세요. 아셨죠?"

재차 다짐을 받았다.





경찰관에게 걸려 온 전화


다시 이틀이 지난 오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저예요"

"아~~ 000님 아드님 되십니까? 저는 00 경찰서 00 경관입니다. 어머니가 금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하셔서 현장에 나와 있는데요."


헉~~~ 또다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커피숍 방문, 금반지 내놓으라고 행패 부리기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어머니 전화기로, 아들인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큰일이다. 반지를 선물한 이가 막내아들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금세 잊어버리신다. 다시는 반지 찾으러 커피숍에 안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또 찾아가 행패를 부리신다. 경찰관까지 부르고,


"아~~~ 어쩌지, 치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시는데...."

"2만 원짜리 가짜 반지로 무사히 넘어가는가 했는데, 또 시작이시네."






20년 전, 딸의 선물


경찰관의 전화를 받은 날 저녁,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제가 금반지 다시 사드렸잖아요. 이제는 커피숍에 가지 마세요."

"제가 오늘 경찰관 전화받느라, 회사 일도 제대로 못했어요."


"어머 ~, 그랬니? 경찰관더러, 다른 곳에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했는데, 너에게 전화를 했구나."

"나 때문에 우리 아들 일하는데 지장 있으면 안 되지. 다음부터 절대 커피숍 가지 않을게."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신다.

그리고, 절대로 다시 안 가신다고 한다. 이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금반지에 애착을 갖고 계실까?

잃어버린 금반지를 선물했던 누나에게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고기잡이하던 아버지가 납북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30대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네 자녀를 키워야 했다. 생활고 속에서, 아이들 돌반지는 물론, 자신의 결혼반지조차 처분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금반지나, 사치품과는 거리가 먼 삶을 평생 살아오셨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칠순을 앞두고 계셨을 때다.

누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이번 생일에 갖고 싶은 거 있어?"

"선물은 무슨 선물, 그럴 돈 있으면, 그냥 현금으로 주라."


"현금은 주면 뭐 해, 엄마가 안 쓰고, 손주들과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 줄텐데."

"만약에 꼭 선물을 하고 싶다면, 금 가락지나 하나 해 줄래?"



이후 누나가, 어머니에게 금가락지를 선물했다.

아마도 남편이 선물한 결혼반지를 팔아버렸던 게 평생 한으로 남으셨을게다.

그걸 아는 누이가 어머니에게 금가락지를 새로 선물했다. 이 금가락지를 어머니는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셨다. '금가락지'를 손에 끼지 않을 때면, 안전한 곳에 숨겨두셨다. 그런데, 치매가 심해지면서, 금반지를 어디 숨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되신 거다.





어머니와 금반지


새댁 시절, 힘든 일 하느라, 끼워 보지 못한 금반지,

어린 자녀 먹여 살리려고, 팔아야 했던 금반지,


노년에 나이 들어, 딸이 선물해 준 금반지

귀하디 귀한데,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금반지,



이제야, 어머니가 왜 그리 금반지에 집착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아~~~, 금반지는 어머니에게 평생 간직하고 싶은 귀한 선물이었구나~!!"




2만 원짜리 가짜 반지를 애지중지하면서도, 잃어버린 금반지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있자니, 자꾸 눈앞이 어질어질해진다.



병원에서 치매 검사를 받으려고, 대기 중이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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