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고구마, 호박고구마는 아는데, 꿀고구마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꿀고구마는 새로 개발된 품종이라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밤고구마는 밤처럼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데, 목이 메어 먹기 불편하다. 호박고구마는 호박처럼 노란빛을 띠고 물기가 많아 먹기는 좋은데, 단맛은 강하지 않다. 꿀고구마는 10여 년 전부터 새로 보급된 품종인데, 부드러워 목이 메이지 않고, 호박고구마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단맛이 아주 강하다. 처음엔 꿀고구마라는 이름이 너무 과장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맛을 보고 나니, 괜히 붙인 이름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상주에 살고 계신 장인어른이 '꿀고구마"를 10년 전에 처음 재배하셨다. 평소 고구마를 많이 먹지 않았는데, "꿀고구마" 맛을 보고는 가족 모두 고구마 애호가가 되었다. 요즘에는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꿀고구마를 아는 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판로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애써 농사지은 고구마를 양파망(12~3킬로)에 가득 담아, 1만 5천 원에 판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고구마 판매하는 것을 도와드렸다.
처음에는 같은 교회 분들에게 팔아드렸다. 나중에는 세종시, 지역 커뮤니티에 광고를 올려 판매했다. 가격은 10킬로에 2만 5천 원, 상주 현지에서보다 좋은 가격이었다. 물론 현지에서는 상품성이 좋지 않은 고구마를 섞어 팔기에 싸게 팔기는 했다. 한해, 두해 판매를 지속하면서, 상주 꿀고구마 반응이 너무 좋았다. 단골도 생겼다. 가을이 다가오면, 고구마 언제 수확하는지 문의가 오곤 했다. 고구마 수확하면, 나에게 몇 박스를 먼저 팔아달라고 예약하는 손님도 생겼다.
예전에는 몰랐다, 고구마 농사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를.
10년 전,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 왔을 때, 장인어른이 제일 반기셨다. 세종에서 상주까지 차로 1시간 거리이기에 자주 찾아뵐 수 있었다.
당시 장인께서 고구마 농사를 많이 하셨는데, 우리 가족에게 고구마 밭 일부를 주말농장처럼 분양을 주겠다고 하셨다. 고구마 두 고랑을 줄 테니, 여기서 농사한 것을 우리 가족이 가져가라 하셨다. 단, 두 가지를 해야 한다. 고구마를 처음 심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수확하는 것을 직접 하는 것이다. 이외에, 종자를 준비하고, 김을 매고, 울타리를 치는 등 모든 일은 장인어른이 하겠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야심 차게, 우리 밭고랑에 고구마를 심으러 출동했다. 그런데, 하루를 다녀오고 나서, 모두가 않아 누웠다. 한 고랑 고구마를 심고, 너무 힘들어 두 번째 고랑은 포기하고 왔다. 그래도, 수확 때만큼은 빠지지 않고, 상주로 찾아갔다. 건강 체질인 큰 딸은 고구마 캐는 것을 재미있어했다. 수확한 고구마를 창고로 나르는 일도 열심히 도왔다. 하지만, 약골인 둘째 딸과 아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십분, 이십 분 정도 고구마를 캐다 보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차에서 쉬고 있었다.
장인을 도와, 매년 가을이면 고구마 수확하는 일을 도왔다. 말이 도움이지, 일은 장인이 다 하셨다. 우리는 마지막 수확하는걸 조금 거들고, 고구마 판매를 돕는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힘들게 고구마를 수확하고, 박스에 담아 판매했는데, 별로 돈이 되지 않았다. 겨우 1~2백만 원 수확 올린걸 장인께 전해드렸는데, 재료비를 제하고 나면, 수익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고구마 심는 고랑 만들 때 경운기 임차비, 고랑에 덮을 검은 비닐 구입비, 고구마 모종 구입비, 수확할 때, 일손 돕는 어르신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데 없다 하셨다.
그래도, 장인이 농사짓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큰돈은 못 벌어도, 시골 생활을 즐기고, 고구마를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걸 보람으로 여기셨다. 적적한 시골생활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이외에, 유일하게 즐기는 일과가 고구마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그런데, 장인의 나이 8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힘이 부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력이 떨어져, 1톤 화물차 운전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읍내에 다니실 때 사용할 전기오토바이를 장만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농사지은 고구마를 밭에서 창고로 운반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집사람과 처남이 고구마 농사를 그만하시라 말씀드렸다. 그런데, 3년 전에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아직은 내가 농사할 힘이 충분하다. 걱정하지 말아라"
큰소리치시던 분이 2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너희들 말이 맞다. 이제는 힘이 들어, 고구마 농사를 줄여야겠다. 무게가 덜 나가는 들깨를 심어볼까?"
조금씩 자식들 이야기를 인정하기 시작하셨다. 작년부터는 읍내에 있는 "주간 복지센터"에 나가면서, 고구마 농사를 대폭 줄였다.
올해 고구마를 수확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은 시험기간이라 못 가고, 집사람과 둘이 가서, 고구마 수확을 도왔다. 고구마를 캐며,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너희 말대로, 내년부터 고구마 농사, 그만하련다. 농사지을 힘이 부족하지는 않은데, 노인복지센터에 다니다 보니, 농사지을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렵네."
노인복지센터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 힘이 부치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공원에 가거나, 산책할 때면, 장인어른이 항상 앞에서 걸으셨다. 그런데, 작년부터 뒤처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고, 쉬었다 가자고 하신다.
장인과 함께 "마지막 고구마 수확"을 마쳤다.
지난 10년 열심히 해오신, '고구마 농사'를 졸업하신다 생각하니, 허전하고 아쉬웠다. 이번에 수확한 고구마는 판매하지 않았다. 대신 가까운 친척들에게 보내드렸다, '고구마 졸업 기념품'으로.
"내년부터는 장인어른이 고구마 농사를 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고구마이니, 맛있게 드세요."
"장인어른이 이제는 농사 말고, 새로운 행복을 찾으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