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by 김추억
여수&요트

여수 바다에서 요트를 보았다.
요트 선수들의 요트 훈련장이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느닷없이 요트를 배우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들 몇 명을 오후 시간에 수업을 빠트리게 하고 격포 바닷가에서 요트를 배우게 했다.

나는 지금 몸 상태가 이렇지만 당시에는 남자아이들이 유일하게 축구에 껴주는 타고난 슛감각을 지녔었다. 그리고 야구도 남자아이들이 끼워주는 유일한 아이였다.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하게 볼을 던지는 편이었다. 나는 투수였다. 작은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포수의 손바닥을 얼얼하게 했었고 특히 외야수, 글러브도 없이 높이 뜬 공을 척척 잘도 받아냈다.

요트는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굉장히 매력 있는 스포츠였다. 내 힘으로 요트를 움직이지 않고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너무나 근사한 스포츠였다.
나는 제갈공명이 된 것 마냥 바람을 느끼고 바람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요트의 방향과 세일 sail, 즉 돛의 위치를 잘 맞춰주면 자동차 마냥 바다에서 쾌속질주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시합을 하면 선배들을 다 이겨먹었다. 그러나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요트를 접어야 했다. 같이 시작한 친구는 중3 때 아시안게임에서 최연소 금메달을 따고 연금이 나왔다.

중학교에 들어온 내 남동생이 요트를 탔다. 고등학교도 요트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대학도 당연히 요트 전공이었다. 2인 1조로 타는 요트였는데 호주,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등등 이곳저곳에서 메달을 수북하게 따왔었다. 대회마다 다른 메달 디자인을 구경하는 게 좋았다.

그런 남동생이 대학을 자퇴하고 돌연 특전사로 들어가 버린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요트협회에서 지원을 아무리 많이 해 주어도 요트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드는 운동이었다.

남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여수로 전지훈련을 자주 떠나고는 했었는데 지금 내가 마주하며 바라보는 저 바닷가 위에서 남동생이 참 오래도록 있었겠구나 싶어서 목이 메었다. 꿈을 접는다는 것의 심정을 나는 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요트로 인생 비스무리한 것을 배웠다.
옵티미스트라는 작은 요트를 탔었는데 요트장에서 바닷가로 그 요트를 네 명이 들고 옮겨야 했다.
요트를 물에 띄워 어느 정도는 걸어서 밀고 나아가야 하는데 초반이 힘들었다. 해변가의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요트는 강한 저항을 받게 된다. 힘이 없으면 자꾸만 뒤로 밀린다.

인생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무엇을 하든 초반이 힘들다. 적응하느라 힘들고 부딪치는 게 힘들다. 인생의 파도는 인생의 날씨에도 영향을 받는다. 요즘처럼 궂은 날씨의 연속이 있기도 하다. 파도에 부딪히며 요트가 나아가듯 삶도 그러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요트를 밀고 나가서는 요트에 올라탄다. 처음엔 물속에서 요트에 올라타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시간의 힘, 훈련의 힘으로 나중엔 껑충 뛰어 요트에 올라타게 되었다. 작은 방향키로 요트의 방향을 잡고 sail, 돛을 펼친다.

요트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요트 타기 좋은 날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하늘이 우중충하고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서 돛이 찢어질 듯 거려야 요트가 신나게 달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거친 바람을 사랑했다. 비 오는 날의 성난 바다를 사랑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요트를 타는 날이 좋았다. 무슨 모험가, 탐험가가 되어 항해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맑은 날이어도 해변가에는 파도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수심이 얕을수록 바다는 거칠고 요란하다. 파도에 저항하며 한참을 계속 나가다 보면 바다는 깊어지고 고요해진다. 바다가 마치 흐르지 않고 정체된 호수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나온다. 그곳에는 온갖 부유물들이 떠있다. 나뭇가지, 쓰레기, 타이어 등등...
저항을 이기고 나와서 평온함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요트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만족하고 평온함을 즐겨도 되었고 다소 느리지만 그 구간을 지나가기 위해 애써도 되었다. 나는 주로 평온함을 즐겼다. 햇살이 따가운 날, 돛을 그늘 삼고 그러면 안 되지만 라이프 재킷을 벗어 베개 삼았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 위에서 혼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늘 품었던 의문이 있었다

'인생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힘들까.'

답 없는 의문을 품다가 요트 위에서 낮잠을 잤던 소녀가 여수 바닷가 위에서 다시 소환되었다.
추억이 늙지를 않는다.

내 인생의 파도와 바람은 제법 거칠게 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지쳐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나를 방치했다. 가고자 하는 곳을 찾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내게는 작은 방향키와 바람을 타고 내달릴 돛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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