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

화려한 슬픔

by 김추억


흑백사진처럼 세상이 찍히는 날이 있다.
목련이 너무나 화려해서 찍었는데 세상에는 그 목련을 화려하게 밝혀 줄 빛이 조금밖에 없었다.
그래서 흑백사진이 되어버린 것이다.


목련의 화려함이 어쩌다 슬픔으로 찍혀 버렸다.
애써 사진에 작품명을 붙이자면 슬픔을 슬프지 않게, 슬픔을 눈치채지 못하게 '화려한 슬픔'으로 이름 붙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산수유, 흑백사진이 아닌데...


열한 살 딸아이의 화사함을 흑백으로 찍어버린 건 엄마인 나였다.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 온 딸아이 표정에는 빛이 조금밖에 없었다. 엄마인 내가 그런 날씨를 본의 아니게 제공했다.


"엄마, 엄마 모습을 보니 엄마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아 보여요. 이제부턴 엄마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고 사세요."


뭐지? 뭘까? 나는 그 정도까지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닌데 딸아이는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괜찮으니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아주 아주 오래 살 건데 왜 그러냐고.

그러나 딸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흑백이다. 내가 그런 먹구름을 본의 아니게 제공한 것이다.


"엄마, 내 11년 인생 모두 엄마한테 미안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린 딸이 자기 인생을 통틀어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 하얘졌고 까매졌다. 머릿속에는 그 두 가지 색 밖에는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내 두뇌를 엑스레이와 MRI로 촬영했을 때 봤던 그 흑백 두뇌처럼 말이다.

흑백사진이다 못해 초점이 심하게 흔들려 버린 사진처럼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무슨 미안함에 인생 전체까지 들먹여.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딸아이의 대답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고 말을 마치더니 펑펑 우는 딸아이였다.


"부모가슴에 못 박으면 평생 후회하고 산다는 거 어디서 봤어요.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딸아이는 나름의 죄책감에 울고, 본의 아니게 딸에게 죄책감을 안긴 나에게 비참함으로 옷을 입은 업그레이드된 죄책감이 찾아와 온몸을 휘둘렀다.


아이를 내 무릎으로 끌고 와서 옆으로 조용히 앉힌 다음에 신생아처럼 안았다. 언제 이리 부쩍 커버렸는지 열한 살 딸아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이 버거웠다. 마치 어미 코알라가 다 큰 코알라 새끼를 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어미 캥거루가 자신의 주머니에 너무 커버린 새끼 캥거루를 간신히 집어넣고 다니는 모습 같았다.


"엄마가 못 박힌 것 없으니 네가 못 박은 적도 없어. 그렇게 미안하면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잉? 엄마가 너한테 그런 생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아이를 더욱 꽉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내 마음에 내가 무슨 못을 박은 기분이 들었다.

딸아이를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으니 몸집이 큰 딸아이는 불편했는 지 내 품을 먼저 벗어났다. 그제야 무게에 짓눌려 있던 내 골반들이 나를 욕한다.


내 품에서 벗어난 딸아이가 뜬금없이 무슨 부산 사투리를 갑자기 나에게 가르쳐 준다고 했다. 뭐라고 한참 떠들어대는데 겨우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어묵'이었다.


"엄마야~ 부싼에서는 어묵을 뭐라 하는지 아나?"


전라도에 사는 사람이 경상도 억양으로 한껏 포장한 목소리였다.


"오뎅? 아니, 오뎅은 일본말 아이가?"


"엄마야~ 오뎅이 다 무꼬? 부싼에 가서 어묵을 어묵으로 했다간 큰 일 난다 아이가! '어묵'이 아이고 '으묵'이다! 으묵!"


딸아이와 내가 미친 듯이 깔깔깔 대는 바람에 흑백사진 같은 풍경에 화사한 색이 입혀져 칼라사진이 된 듯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다시 나 혼자 남겨지자 세상이 또 흑백 사진처럼 또 변한다.

몸이 병으로 아픈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엄마로서 아팠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형 주제로 다양한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가여운 딸아이, 그리고 가여운 나를 위해 잠시 울고 나서 나는 지쳐 잠들었다.


꿈을 컬러로 꾸는 사람들의 모임 하나를 주관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려나 싶다. 그런데 그런 모임을 이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선명히 꾸던 컬러 꿈을 갑자기 흑백으로 꾸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네 번째 뿌연한 흑백으로 꿈을 꾸었다.

네 번째 꿈에서는 드디어 내가 꿈속에서 이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흑백 세상을 보고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아맞힌 것이었다. 꿈속에서 내가 꿈속 세상을 가소롭게 여기며 웃었다.

왜 컬러로 꾸던 꿈이 흑백이 되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는데 본능적으로 그냥 드는 생각은... 선명했던 아픔들이 희미해지다 못해 이제 뿌옇게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흑백의 꿈속에서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고 더 이상 울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내 슬픔도 흑백사진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내 슬픔의 색을 알지 못한다.
내가 환하게 웃으면 슬픔은 어둡게 숨겨진 흑백사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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