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이네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다. 얼룩덜룩 꼬물거리는 바둑이 다섯 마리였다. 첫째인 혜정이는 늘 선택권이 없다. 아래로 네 명의 동생들은 서로 무늬가 예쁘고 건강한 강아지를 자기 소유로 가지려 했다. 뭐 혜정이도 성격이 그렇게 작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동생들에게 양보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소랑 송아지도 동생들이 건강하고 살찐 소들이 자기거라 우기고 가장 늙고 뿔도 하나 빠져버린 소를 혜정이 소라고 해도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다 우리 가족 모두의 것이니까 그렇게 내 것, 네 것 하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혜정이는 알았다.
혜정이는 맏이 느낌이 나서 듬직했다. 엄마 아빠가 동생들을 맡기고 집을 비우고 일을 나가도 걱정 없을 정도로.
둘째 혜미는 성격이 사나워서 동생들도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학교에서도 건드는 사람이 없었다. 셋째 혜림이는 언니들과 동생들 사이에 끼어 둥글둥글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셋째 딸답게 얼굴이 진짜 예뻤지만 말투가 무뚝뚝한 군인 같았다. 넷째 현철이는 혼자 남자아이로 태어나 누나들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컸다. 힘과 덩치가 비슷한 셋째 혜림이랑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혜림이가 귀찮아할 때가 많았다.
막내딸 혜영이는 또래보다 작고 약했다. 얼굴이 하얗고 성격이 순했다. 오 남매 모두 성격이 제각각이었다.
강아지가 태어나고 또 혜정이의 동생들은 예쁘고 귀여운 강아지를 서로 자기가 가진다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제일 성격 있는 둘째 혜미가 달마시안 느낌이 나는 무늬의 강아지를 골랐다. 그리고 셋째 혜림이가 등에 큰 검정 무늬가 박힌 강아지를 고르고 넷째 현철이가 얼굴에 하트무늬 비슷한 점박이 강아지를 골랐다. 다섯째 혜영이는 꼬리 쪽에 검은 점이 몇 개 있고 대부분 하얀 털로 된 강아지를 골랐다.
남은 강아지는 당연히 혜정이의 것이 되었다. 혜정이의 강아지는 얼굴부터 몸 꼬리까지 시커먼 색깔이었고 유난히 작았다. 얼굴 표정도 뭔가 억울해서 울상을 짓고 있는 거 같았다.
혜정이는 동생들이 서로의 강아지가 제일 이쁘고 귀엽다고 한 번씩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참 하찮은 걸로 다 싸운다 싶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강아지들은 무럭무럭 자라 학교 등굣길까지 졸졸 따라왔다. 아무리 집에 가라고 쫒아도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고 한 번은 버스 안까지 따라 들어와서 아이들의 진땀을 뺐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면 아이들은 살금살금 강아지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곧 강아지들에게 발각되어서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여 강아지들의 반가움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했다. 두 앞발로 사정없이 올라타는 강아지들 때문에 옷이 엉망이 되고 해어지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졌다. 강아지들은 추위도 못 느끼는지 늘 장난치고 신났다. 그런데 혜정이의 강아지가 이상했다. 밥도 안 먹고 움직임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혜정이의 강아지가 한눈에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셋째 혜림이가 혜정이의 강아지를 창고로 데려가 지푸라기를 쌓아둔 짚더미 위에 혜정이의 강아지를 눕혔다. 엄마 몰래 가져온 두툼한 털 옷 하나를 깔고 말이다.
"혜정이 언니랑 혜미언니는 학교에서 늦게 오니까 우리가 혜정이 언니의 강아지를 대신 돌봐야 해! 알았지!
현철이와 혜영이는 비장한 각오가 되었다.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오는 우유를 먹지 않고 집으로 들고 왔다. 그리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병든 강아지의 입을 벌려 숟가락으로 조금씩 흘려 먹이기 시작했다.
좀처럼 먹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거부하는 혜정이의 강아지였다. 혜림이는 강아지에게 호통을 쳤다.
"죽으려는 거야! 이거 안 먹으면 죽는다고! 억지로라도 삼켜! 쫌!"
혜림이는 강아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고 강제로 입을 벌려 우유를 먹였다. 그 모습이 흡사 강아지를 학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혜림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강아지의 모습이 아침보다는 점심이, 점심보다 저녁이 더 마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켁켁 거리며 우유를 강제로 삼키는 혜정이의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 보였는지 막내 혜영이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현철이는 우유를 탐내는 다른 강아지들이 창고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지키며 다른 강아지들과 놀아주느라 녹초가 되었다.
며칠째 차도가 없는 강아지를 보며 혜정이는 강아지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강아지의 죽음으로 슬퍼할 동생들의 모습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생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 나서는 부정적인 생각은 일절 안 하기로 결심했다.
"혜림이 언니, 큰 언니 강아지가 죽으면 어떡하지? 며칠째 죽은 것처럼 하고 있잖아."
훌쩍이는 막내를 셋째가 달래는 소리가 났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힘을 합쳐 간호하면 강아지는 분명 나을 거야. 우리도 애기 때는 다 아팠다구. 엄마 아빠가 간호해 주고 돌봐줘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컸잖아. 똑같은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살릴 거니까 울지 마. 뚝!"
"아프지 마, 강아지야. 힘내. 금방 나을 거야."
강아지같이 작은 애기 혜영이가 애기 목소리로 강아지에게 힘을 주는 말을 하며 애기 손으로 쉬지 않고 쓰다듬어 줬다.
"너무 쓰다듬지 마. 잠도 제대로 못 자겠다."
현철이가 혜영이한테 뭐라고 했지만 혜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냐, 오빠! 나는 엄마가 나 쓰다듬어 주면 더 잠이 오고 더 잘 자는데? 정말이야!"
골목대장 혜림이는 군인 같다. 동생들을 조용히 시킨다.
"둘 다 조용히 해. 잠을 푹 자는 시간이 강아지가 병균과 싸우고 이기는 시간이니까."
혜림이는 무뚝뚝하지만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혜정이 언니의 강아지가 아프게 된 것은 어쩌면 감기나 병균이 아니라 혜정이 언니의 강아지가 못생겼다고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사랑과 관심을 안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 강아지를 보며 그동안의 무관심에 죄책감이 들고 한없이 미안해하는 혜림이었다.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혜림이와 현철이와 혜영이는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짚더미에서 내려왔다.
"오늘 밤도 잘 버텨야 해, 낼 아침 일찍 올게."
혜림이의 군대말투를 뒤로 하고 혜영이와 현철이가 강아지의 볼을 부비며 입맞춤을 해주었다.
다음 날, 혜정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다. 동생들이 안 보이는 것은 모두 아픈 강아지에게 가 있는 것일 거다. 혜정이는 강아지들의 반가움으로 엉망이 된 옷을 갈아입고 동생들과 먹을 간식을 쟁반에 챙겼다. 어제 엄마가 쪄놓은 고구마와 볶은 땅콩, 건빵 한 봉지를 들고 창고에 들어갔더니 동생들이 다 모여있다. 그러더니 혜정이를 발견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언니! 빨리 와봐! 빨리빨리!"
동생들의 급한 손짓에 혜정이는 얼른 짚더미에 올라갔다.
혜정이의 강아지가 눈을 뜨고 있었다. 고개까지 들고 혜정이와 눈을 마주치는 강아지였다. 강아지의 눈빛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어? 살아나는가 보네?"
언니의 반응에 혜미가 자기 강아지 인양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오늘 우유를 숟가락으로 넣어주려고 하니까 자기가 고개를 들고 핥아먹더라니까!"
이번에는 군대말투로 혜림이가 이야기했다.
"눈꼽도 이제 많이 안 생기는 것 같아. 그래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 잘 보살펴야 해."
혜영이에게 그만 쓰다듬으라고 했던 현철이가 강아지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더니 혜정이가 가져온 고구마를 보더니 이야기했다.
"우유도 이제 잘 먹으니까 고구마 쪼금씩 으깨서 먹여 보자!"
"그래! 오빠 좋은 생각이야! 우유만 먹고 그동안 얼마나 배고팠을까?"
혜영이는 오빠가 그런 생각을 해 낸 것이 멋져 보였다.
혜정이가 고구마를 강아지 눈곱만큼씩 떼어내어 강아지에게 주니 곧잘 받아먹는다.
짚더미 밑에서 고구마냄새에 낑낑대는 강아지들에게 현철이가 자기 몫의 고구마를 4 등분해서 나눠주었다. 혜영이는 그런 오빠가 좋아서 자기 몫의 고구마를 반 나누어 오빠에게 주었다.
고구마랑 땅콩이랑 건빵을 먹으면서 오 남매는 기운을 차린 강아지를 둘러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짚더미 아래 네 마리의 강아지들도 서로 붙어서 잠이 들었다.
갑자기 혜림이가 뜬금없는 고백을 했다.
"나 이담에 커서 수의사가 될 거야."
혜림이는 강아지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너는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언니들의 이야기도 무시할 만큼 결심이 섰다.
강아지가 기지개를 쭉 켜더니 갑자기 바들바들 거리며 네발 짚고 일어섰다.
"우와!~"
"히햐~"
"어라? 일어섰네!"
"낼 이면 뛰것다!
"아휴! 이 이쁘고 대견한 것!"
혜정이의 강아지는 이미 모두의 강아지의 되어 오 남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따뜻한 노을빛이 창고 안까지 길게 스며들어 오 남매의 기쁨을 빛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