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주의보

by 김추억

이 건물이 설마 비에 뚫리는 건 아니겠지?
오늘 아침 빗소리에 든 걱정이다.
크릉크릉 하늘이 겁을 주고 세상을 어둡게 한다.

순천順天, 오늘 순천은 순한 하늘 아니고 사나운 하늘이다.

오늘 계획은 딱 하나 정했다.
낮잠 시간에 잠 안 자고 비에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다.

작년에 장마가 엄청났던 게 기억난다. 그 걸 기억하는 것은 엄청난 폭우를 뚫고 보이스피싱범을 잡는다는 사명으로 순천 경찰서 사이버팀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나를 속이는 피싱범을 나도 속아 넘어가는 척 속이면서 경찰서로 운전을 하고 가는데 아,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장마도 장마였지만 그날은 안전 안내 문자가 억수로 온 태풍이 왔었던 날이었구나!

경찰서로 운전하면서 가는 길에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흔들었었고 도로에 나부끼는 쓰레기들과 잘린 나뭇가지들을 많이 만났었었고 간판이 떨어져 날아올까 무서웠던 날이었다.

종이에 글을 써서 경찰과 당시 상황을 소통했는데 실질적인 피해가 있어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그럼 내가 돈을 조금 송금해 보겠다고, 대포폰과 대포통장일 거라서 잡지도 못할 거라고... 이런 대화들을 주고받았었다.

이 확실한 사기꾼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수사의 성립 요건을 존중해야지 하며 경찰서에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지리지리 한 장마와 무시무시한 태풍이 끝나고서 우연히 동네 주차장에서 만난 나무도 기억난다. 그 사진이 어디 있을 것인데 찾아봐야겠다.

분명히 죽었다고 판단한 나무였었는데 엄청난 태풍이 살려냈다. 충격요법! 번쩍번쩍 번개 아래서 정신을 차렸을 라나?

나는 아직 독서를 습관들이지 못해서 그런지 책으로는 많은 걸 배우지 못했다. 책으로는 진짜 조금 배우고 책보다도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조금 더 배웠다. 그리고 나를 가장 많이 배우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연 같다. 자연은 학습의 스트레스도 주지 않고 잔소리도 없다. 나를 배우게 하려고 사시사철 묵묵히 내가 보든 안 보든 제자리를 지키며 애쓴다. 자신을 벗기고 입히는 일을 반복하면서 언젠가는 내가 보고 무언가를 배우기를 바라는 것 같다.

폭풍 같은 시간을 견뎌서 생을 다시 피운 단풍나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이 사진을 즐겨찾기 해 놓았었기에 사진을 금방 찾았다.

오늘은 낮잠 시간에 비에 관련된 글을 쓸 거다. 오늘 순천은 호우주의보 발효 중이다. 지금 비가 오고 있으니까 비 올 확률 100%, 내가 낮잠 시간에 글 쓰다가 잠들 확률 99.99%이다. 잠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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