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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by 김추억

저는 지금 바람소리를 듣고 있어요.
크고 강한 바람소리는 스스로 큰소리를 낼 수 있지만 작고 연약한 바람은 그러지를 못해요.
소리를 내긴 하지만 원체 작디작은 소리라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는 거예요. 청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들을 수 있을까 말까지요.

그런데 그 연약한 바람은 필사적이에요.
그 작은 힘으로 다른 것들을 움직여 소리를 내게 하거든요.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이랑 조금은 닮았어요.

여리고 작은 바람은 지혜로 강해지는 법을 터득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소리를 어떻게든 듣게 하지요.

잔잔한 수면을 미끄럼 태워서 결국 물가 끝까지 밀어붙여서는 철썩대는 소리 나게 만들고요, 사람에게 다가가 주변의 작은 먼지를 일으키기도 해요. 그래서 사람에게서 에~취하는 재채기 소리, 콜록거리는 소리도 만들어요.

저는 지금 바람소리를 듣고 있어요. 어떤 바람소리냐 하면요, 연약한 바람이 나무를 간지럽혀서 내는 소리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간지러워서 싸라락 소리를 내요. 둥실둥실 움직거려요. 그러면서 깔깔거리며 웃음소리를 내고 있어요.

작고 연약한 바람은 목소리가 작지만 다른 것들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요. 참 영리한 바람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원래는 바람의 소리예요. 바람이 지휘하는 소리예요. 나뭇가지, 나뭇잎, 웃자란 풀섶과 대롱대롱 매달린 넝쿨장미는 연약한 바람 앞에 힘을 주지 않아요. 연약한 바람이 결코 자신들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거든요. 고맙게도 그냥 웃고 즐겨요. 바람 부는 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며 자존심도 없이 바람을 대언해 주지요.

저 연약한 바람을 닮은 사람을 알아요! 목소리가 굉장히 작거든요. 그 사람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요. 당연히 귀 기울여주는 이가 없지요.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지금 저 연약한 바람소리를 들어주느라 귀를 쫑긋 세워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집중하고 있듯이요. 나무에서 나는 소리, 그러니까 작고 연약한 바람이 내는 소리가 지금 눈물 나게 강하고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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