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차에 대한 기억

말차 격불의 순간

by 산토샤

사사사사사사사사. 격불. 말차에 초록 거품을 일으킬 때 나는 소리가 참 좋다. 그리고 그 거품을 더 작게, 더더 작게 만들어 마침내 아주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 낸다음 마지막으로 차선을 한바퀴 돌려내어 뽑아낼 때 중앙에 퐁실!하게 솟아난 거품을 마주하게 되면 비로소 마음이 평온에 다다른다.


보리차, 율무차 이런 대용차 말고 차나무 찻잎으로 만든 내 인생 첫 차의 기억은 어릴 적 어느 절에서 스님이 격불하여 내어주신 한 잔의 말차. 캬~ 이런 맛은 확실히 아니었고 해조류? 혹은 어항의 이끼 맛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지금은 이 맛이 바로 일본의 사람들이 최고로 친다는 그 맛, ‘우마미’라는 것을 배워서 알게 되었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우마미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말차는 차광재배한 찻잎을 찌고 말린 뒤 잎맥과 줄기를 모두 제거한 잎사귀를 맷돌에 곱게 갈아 격불하여 마시는 차로, 그냥 찻잎을 우려먹을 때는 물에 우러나지않는 유익한 성분들까지 마실 수 있는 차다.


지금은 말차가 라떼, 아이스크림, 와플 등등 각종 베리에이션 음료와 디저트로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처음 내가 알게되었던 말차란 다다미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하고 복잡한 과정을 걸쳐 만들어 내는 일본식 다도를 통해서 마실 수 있는 뭔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그런 어렵고 먼 차였다.


그러다 2019년 개봉한 스무살의 주인공이 20년간 다도 수업에 참여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내용의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를 보고, 또 책을 사서 읽으며, 마침 방황하는 나의 마음을 쉬게 할 핑계로 다도를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이렇게 오랜 취미가 될 줄, 또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될 줄은 모른채.


그냥 궁금증에 한번 등록한 원데이 클래스로 시작한 나의 다도는 어느덧 4년, 일일시호일의 주인공인 노리코처럼 실패한 순간에도, 시련과 실연의 순간에도 몇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꾸준히 계속되었고 나에게 위로가, 기쁨이, 삶이 되었다. 이 다도를 통해 쌓아간 하루하루가 나에게 평온한 일상과 어떤 일이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었다.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에 단 한번이라고 생각하고 임해 주세요'라는 일일시호일의 대사가 참 좋다. 생에 단 한번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들.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앞으로는 매일 매일 순간에, 내 앞에 놓여있는 지금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가장 좋은 날로 채워갈테다. 늘 처음처럼, 또 마지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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