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벨

by 재인

내가 사는 이곳은 창문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곳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찝찝한 냄새도 난다. 지하실일까? 아니다. 나는 그녀의 집 현관 신발장에 갇혀 있다. 신발장에는 온갖 종류의 신발이 다 있다. 여름 샌들과 슬리퍼, 색색깔의 운동화, 굽이 높고 낮은 각종 구두, 겨울 어그 부츠와 레인 부츠까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곳에는 습기를 먹는 하마도 있고 나쁜 냄새를 없애준다는 방향제도 있고 좋은 향기를 내뿜는 디퓨저도 있다. 하지만 어제 그녀의 아들이 벗어 놓은 운동화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난다.


나는 언제쯤 이곳에서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쭈쭈 빵빵한 미녀들을 볼 수 있는 핫한 헬스장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나를 몇 년 전에 사놓고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나는 예쁜 핑크 색깔에 2킬로밖에 나가지 않은 아담한 크기인데 나를 이렇게 방치하다니 참을 수가 없다. 나를 들고 매일 운동하면 그녀가 원하는 팔뚝을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다.


그녀는 늘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다. 귀가 얇아 다이어트에 좋다는 것은 무조건 사고 본다.

내가 사는 이 신발장 안에는 여러 가지 신발들과 나뿐 아니라 그녀가 그동안 사들인 물건들이 꽤 있다. 찡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색의 요가 매트, 몸 곳곳의 근육을 풀어주고 근육통을 줄여준다는 갈색 폼롤러, 다리 부기를 개선하고 혈액 순환 촉진에 도움이 된다는 보라색 요가랑도 있다. 그녀는 왜 우리들을 사놓고 쓰지 않을까? 우리를 사놓기만 하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도대체 그녀의 마음을 모르겠다.

탁, 신발장이 열렸다. 그녀의 아들이다. 그는 신발장을 쭉 훑어보더니 나를 만지작거린다.

“제발 나를 꺼내줘” 내가 소원을 말해 본다.


드디어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는 나를 꺼내 들고는 앞뒤로 흔들어 본다. 그러고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나를 들고 자기 방으로 간다. 그는 책상에 놓인 태블릿에서 덤벨 운동 영상을 찾아 튼다.


“자, 다리는 골반 너비로 벌리고 서서 복부와 엉덩이에 힘을 줘 몸통을 단단히 고정합니다. 덤벨을 손바닥이 몸 쪽을 향하게 잡아주세요. 팔꿈치는 살짝 구부려 고정한 상태로 덤벨을 어깨높이까지만 들어 올립니다. 하나, 둘…. 하나, 둘….”


영상의 트레이너가 코치한 대로 그는 열심히 따라 해 본다. 지난주 수능이 끝난 그는 이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나 보다.

오랜만에 맡은 바깥공기는 참으로 달콤하다. 이제 나를 계속 쓰려는 걸까? 아니면 한 번 쓰고 다시 신발장에 처박을까?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를 꺼내준 이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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