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했다.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물론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책을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나만 그런가 싶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모조리 찾아보았다. 그래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누군가 이 책은 다 읽고 난 후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드문 일이었다. 첫 장을 다시 읽는 순간 처음 읽었을 때 약간 모호하다고 생각했던 표현들이 명료하게 느껴졌다.
토니는 대학 때 베로니카라는 여학생과 만나 사귀게 된다. 그는 보통의 젊은 남자들처럼 여자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어 했고 이 부분에 대해 엄격했던 그녀와 결국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고 난 후 어느 날 그녀는 술에 취해 그와 밤을 보내게 되는데 다시 만나지는 않기로 한다. 그 후 그의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이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너무 화가 난 토니는 악담을 퍼붓는 답장을 보내고 그 둘을 그의 인생에서 떠나보낸다. 졸업하고 미국에서 6개월가량을 보내고 온 그는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똑똑한 친구가 죽음마저 선택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지만, 이면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그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행복한 생활을 하다 이혼하고 어느새 60대가 된다. 어느 날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그에게 유산과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겼다는 변호사의 연락을 받게 되자 그는 혼란에 빠진다. 그는 일기장을 받기 위해 40년 만에 베로니카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와 만났던 가게와 펍에 계속 들르게 되고 그곳에서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
조금 충격적인 결말에 이게 맞나?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생각했다.
그는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고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받게 되었을 때 화가 나지만 침착하게 잘해보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실상 그가 보냈던 편지에는 악담만이 가득했다.
사람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고 그러므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화가 나서 악담을 퍼붓는 편지를 쓴 것이 사실이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무안해 잘해보라는 답장을 보냈을 거로 생각하는 점이 그의 기억이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서 그런지 나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에게는 약간 벅찼던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바로 그의 친구와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축복을 해줄 수 있을까? 곧 알게 될 사실이라서 그들은 서로 만난다는 얘기를 밝히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것 또한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은 아닐지. 상대방의 마음보다는 자신들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벌인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은 인물은 바로 베로니카이다. 그녀는 그와 사귀는 내내 그를 간 보고 마음에 차지 않음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늘 그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타박한다. 그냥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말해주면 안 되나? 정작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불만을 감춘 채 아닌 척하는 사람들, 본인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사람들, 늘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게는 이런 사람들이 이해심이 많고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과는 소통이 잘 되질 않고 겉도는 관계에 머물다가 결국 돌아서게 된다. 좋은 관계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베로니카는 일기장 대신 예전 그가 화가 나서 악담을 퍼부었던 편지를 그에게 보낸다. 마치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듯이. 에이드리언이 그녀의 어머니와 관계를 맺고 어머니가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에이드리언이 자살하게 된 상황은 그의 탓이 아니다. 그녀가 모든 원망을 그에게 돌리고 있는 것은 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에이드리언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나머지 자살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근데 마지막 3개월 동안 그가 행복했었다고 하니 혹시 그녀의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바란 적이 없는 삶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유서를 남긴다. 죽음마저 얼마나 에이드리언다운지.
마침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토니는 많이 자책하고 무너진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그의 탓이 아닌데도 (편지는 과한 면이 있지만) 그는 거대한 혼란을 느끼고 그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가진다.
이 작품을 읽고 내가 가진 기억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떠올려보았다. 며칠 전 아들과 말다툼하던 모습이나 한 학부모의 컴플레인 전화를 받으며 흥분했던 모습 등 단편적인 기억도 있고 결혼식이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첫걸음을 떼었을 때의 오래되었지만 선명한 기억도 있다.
이 중에서 내가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게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곡하여 기억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기억일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좋은 관계는 아니었을 거다. 분명히 나쁜 기억들 속에는 내가 상대방에게 한 행위는 보다 적게, 내가 받은 것은 보다 크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즉 망각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한다. 뇌는 적당히 기억할 것은 단기기억에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은 장기기억에 옮겨 놓는다고 한다.
우리가 나쁜 기억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거나 축소 또는 왜곡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존본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