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바쁘다. 남들처럼 연말 모임이 줄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말에 꼭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마음이 부산스럽다.
하지만 12월이 되면 꼭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새 다이어리를 사는 것이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나는 1년 동안 쓸 다이어리를 진심으로 고른다. 새로 구매한 다이어리에는 가족 생일이나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일들을 미리 옮겨 적어 놓고 새해 다짐 같은 것도 적어 놓는다.
좀 더 젊은 시절에는 진짜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해서 색색깔의 볼펜과 각종 스티커를 총동원하고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도 붙이고 영화표나 미술관 티켓도 짧게 코멘트를 적어서 붙여 놓곤 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했나 모르겠다.
오늘 우연히 쇼핑몰을 지나다가 다이어리 생각이 나서 들어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되어도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지 않고 눈도 잘 오지 않기에 춥지는 않아도 마음이 시린 계절이다. 그나마 이런 쇼핑몰에 와야 대형 트리도 보고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소품도 볼 수 있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도 들을 수 있다.
층마다 예쁘게 꾸며진 트리를 구경하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러고는 곧장 아트박스로 향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문구 판매대에 갔는데 글쎄 다이어리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노트나 수첩뿐이고 다이어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요즘은 이런 곳에서 다이어리를 안 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나왔다.
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문구점에도 들렀지만, 다이어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득 작년, 이 무렵에도 다이어리를 찾아다녔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문구점 사장님이 요즘은 다 핸드폰으로 메모하고 스케줄 관리를 해서 다이어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 작년에도 이렇게 다이어리를 찾아다니다 인터넷을 뒤져 샀던 일이 떠올랐다.
작년에는 그래도 몇 가지 있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근데 올해는 아예 하나도 없다니 너무 아쉽고, 연말마다 하는 연례행사를 이제는 못 하나 하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어 가는구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종이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할 일들을 메모한다. 핸드폰은 그저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찍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이제 세상은 AI이니 메타버스이니 하는 것들로 더 변하게 될 것이다. 문득 예전 어른들이 컴퓨터를 할 줄 몰라서 애를 먹었던 것처럼 나도 혹시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