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by 재인

12월이 되면 항상 한 해를 돌아보고 올 한 해는 나에게 어떤 한 해였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오십이 넘고 갱년기가 오면서 몸의 변화가 느껴지고 커리어에 변화도 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남은 오십 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던 한 해였다.

올해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딱 1년 동안 읽었던 책을 정리해 보니 총 140권이었다. 한 달에 10권을 조금 넘게 본 셈이다. 그러면 일주일에 3권, 이틀에 한 권 정도는 읽은 셈인가? 와, 나 일 년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올해 내가 발견한, 잊을 수 없는, 앞으로 그들의 신간이 너무나 기다려지는 작가 두 명이 있다. 한 분은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란 책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였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게 된 책이었다. 이 책은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인데 10편 모두를 아우르는 주제는 쓸쓸함이다. 구멍에 관한 어린 시절 친구와의 아픈 기억, 물리학을 전공하는 여학생과 나이 많은 교수와의 관계 그리고 누나의 거짓말을 통해 그녀의 사랑의 방식을 알게 되는 얘기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분은 단편소설 부문의 플래너리 오코너 상을 받으신 분이고 이미 많은 작가가 (김영하, 백수린) 칭찬을 마지않는 분이었다.


“사라진 것들”도 단편집인데 총 15편이 수록되어 있고 15편 모두 40대 남성 화자의 시점으로 되어있다. 40대는 일에서든 가정에서든 이젠 뭔가 안정적일 것 같은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괴로운 그런 시절이었다. 근데 미국에서 그것도 남성 작가가 그려낸 40대 중년 남성의 삶은 내 지난 40대를 돌아보는 듯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의 책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끌어낸 것이 아닐까.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을 툭 하니 무심한 듯하면서도 세밀하게 표현한 점이 좋았다. 그로 인해 나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남성 작가의 딱딱함이나 투박함이라는 편견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되었다.


앤드루 포터가 나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면 나의 가을을 낭만적이고 지적으로 만들어 준 작가가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이다. 그의 책은 우리 동네에 한 독립서점에서 북토크의 주제라고 해서 처음에 읽어 보게 된 책이다. (아쉽지만 북토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책을 읽고 흥분된 마음으로 같이 얘기하고 싶었을 때는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렸다. 좀 더 빨리 읽을 걸 하고 너무 후회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읽으면서는 율리아누스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로마 황제 계보를 찾아보며 난데없이 역사 공부를 같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철학책인가. 역사책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주인공 닐이 EF라는 여교수님을 만나 사랑이랄까. 존경이랄까, 하는 뜨거운 감정을 가지는 되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가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과제, 로마 황제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삶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되는 이야기이다.

닐은 3년의 짧은 통치 기간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규명하고 후대에 계몽사상의 시초가 된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드라마틱한 생에 대해 에세이를 쓰면서 그리고 그가 그동안 보고 알았던 교수님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그녀의 또 다른 모습들에 대해 들으며 우리가 타인에 대해 다 안다고 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두 번이나 읽게 만든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은 스릴러인가. 에세이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주인공 토니가 경솔하고 잘못했다는 많은 리뷰와는 달리 나는 그 모든 것은 토니의 잘못이 아니고 각자가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전 여자친구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사귄다는 소식에 흥분해서 막말의 편지를 보낸 것을 두고 어쩌면 사람들이 약간 찌질하다고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토니의 행동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나에게 얼마간의 영향을 책들에 관해 얘기하다 보니 또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바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이다. 이 책은 스토너라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되고 결혼하고 나이 들어 암 선고를 받고 퇴직해서 삶을 마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인생이 훅 하니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넌 무엇을 기대했니? 나에게 얘기하는 걸까? 누군가가 삶은 연속의 배신이라고, 항상 나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은 내 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늘 생각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2025년이 저물어 간다.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는 뭔가 희망차고 꿈꾸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 이렇게 되려고 그랬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늘 안정되고 편한 삶을 원하지만, 나의 삶은 아직도 불안정하고, 모래밭투성이다. 한편으론 그게 삶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새해가 밝으면 나는 또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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