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표

by 재인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다. 아이가 집으로 오는 시간에 맞추어 외출했다 서둘러 돌아왔다. 마침 아이는 집에 와 있었다. 성적표 나왔니? 잘 나왔니? 하고 물으니, 아이는 말없이 성적표를 건넨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한다.


성적표를 보고 적잖이 놀랬다. 지난달에 아이가 수능을 보고 와서 가채점을 하지 않기에 시험을 잘 못 봤으리라 걱정하며 나 나름대로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성적표는 내가 생각한 경우의 수에도 없는 최악의 점수였다.

너무 놀라니까 오히려 침착해졌다. 일단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먹지 않겠다고 해서 나 혼자 먹었다. 일단 배가 차니 생각이 돌아갔다. 아, 인제 어쩌지?


남편에게 전화했다. 성적을 얘기해 주고 어떻게 하냐고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도 놀란 모양이다. 그가 바쁘다고 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정말 바쁜 건지 놀라서 할 말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아는 동생에게 하소연했다. 그녀와 얘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왔던 마음이 풀어져 주체하지 못하고 나를 휘어 감았다.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은 우리 아이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아이가 시험을 못 봐서 화가 나는 걸까? 내가 그동안 열심히 뒷바라지해줬는데 그에 상응한 결과를 내지 못해 화가 난 걸까? 아이가 미안하다고 말하던 상심한 얼굴이 떠올라서일까?

한참을 울고 나니 진정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결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은 것이 걸리긴 했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용히 집을 나왔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다 본 책들을 반납했다. 문득 아침부터 바쁜 오늘 아직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까운 카페로 가서 따뜻한 라테를 시켜 놓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이란 걸 해야 하는데,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커피를 다 마실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점심을 거른 아이를 위해 샌드위치며 각종 아이가 좋아할 만한 빵들을 한가득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네가 갈만한 대학을 찾아보자. 괜찮아,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을 거야.라고 했다. 아이에게 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나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대학 원서 쓰는 법을 공부했다. 성적표에 나온 등급 외에 표준편차와 백분율에 대해 이해하고 각 대학의 특징을 조사하고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어떤 대학이 유리한지(대학마다 과목에 대한 비중이 다르다. 내가 잘 본 과목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대학이 유리하다.), 어느 정도가 안정권의 대학이고 어느 정도까지 모험할 수 있을지를.(원서는 가군, 나군, 다군으로 총 석 장을 쓸 수 있다. 대게 가군은 상향 지원, 나와 다군은 안정 지원을 한다.) 입시는 정말이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몇 시간 동안 조사했지만, 아직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이제 아이의 성적을 받아들였다. 아이는 아직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난 상태이다. 나에게 재수하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원서를 쓰고 그것에 관한 결과를 보고 생각해 보자.라고 했다.


이제는 정말 운이 필요한 때인지 모르겠다. 일 년 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 기도가 통한 것 같지 않아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기도가 필요한 타임인 것 같다.

아이만큼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아이가 입시를 치르면서 아이의 건강을 생각한 식사를 챙기고 필요한 사소한 것들을 챙기며 나는 진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그 앞에서 기다리며 예전에 우리 엄마도 이랬겠구나. 그날 꽤 추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창옥 선생님이 말했다. 어떻게 우리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겠냐고? 지금 많이 힘든 것은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것이라고, 잘 안되어도 괜찮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아이와 나는 지금 성장 중이다. 이 성장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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