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by 재인

어느 때에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 살쪘다는 말보다 더 싫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고 있는 주름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자신이 겪은 일만 글로 쓰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50대에 20대 초반의 30살 가까이 나이 차이 나는 남자를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젊은 남자”란 책에서 자신이 왜 젊은 남자를 만날 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녀는 같은 연배의 남자를 만나면 보기 싫은 주름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마치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젊은 남자를 만나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 자신도 그 남자와 같은 나이라고 착각하는 점이 좋았던 거 아닐까?


역시 사람들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나이가 드는 것이 싫은 것인지, 나이 들어 보인다는 사실이 싫은 건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도 있다. 불필요한 감정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젊을 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감정싸움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일 때문에, 아이 때문에 싫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도 있었다. 감정노동이란 얼마나 지치고 힘든 일인가? 싫은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은 얼마나 고역이었나?


이제 아이는 성인의 반열에 들어섰고 내 주위에 사람들도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가끔은 너무 좁은 인간관계가 나의 사고를 더 편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싫은 일은 안 해도 되고 나에게 열등감만을 안겨주는 누군가는 만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예전 아이가 어릴 적에 한 패스트푸드점에 갔을 때 일이다. 나는 아이가 주문한 햄버거와 음료 등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두 손을 꼭 잡고 들어오시는 거다. 뭔가 패스트푸드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에 (물론 이것은 나의 편견일 수 있다.) 유심히 보게 되었다. 두 분은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서 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하시며 커피를 드시는 거다. 특별할 게 없는 그림이었는데 너무 보기가 좋았다. 그때 뭐랄까? 아,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또 한 번은 평일 도서관에서 어느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다. 겨울이라 7시여도 밖은 깜깜했다. 도서관은 북토크가 있는 강연장 외에는 다 닫혀 있었다. 처음 가 본 도서관이라 입구를 헤매다 겨우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한 할머니가 타고 계셨다. 할머니는 잘 차려입으신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 마트에서 마주칠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시지? 궁금했는데 마침 내가 가는 북토크 장에 들어가시는 거다. 북토크 장에 들어선 후에는 출석 체크도 하고 작가의 사인도 미리 받느라 할머니의 존재를 어느새 잊고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작가와의 시간이 끝나고 늦은 시간이라 빨리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타셨다. 나는 그때도 할머니와 도서관은 참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나의 편견이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오셔서 작가를 알고 오신 건지, 작가의 책을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얘기를 오랜 시간 잘 듣고 또 어느새 조용히 돌아가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이 들어서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주변에 보면 80대에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고 90대 어르신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아마 우리는 100세 아니면 그 이상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딱 절반을 산 셈이다.


남은 50년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나의 꿈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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