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의 모든 말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단어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좋은 단어들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사랑이 으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눈부신 안부”에서 백수린 작가는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다정이란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다정하다는 말은 사랑이란 말처럼 강하진 않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서서히 사람에게 스며드는 감정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주말 내내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을 했다. 홍정은, 홍미란 자매 작가의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란 드라마이다. 1편을 10분 정도 보았을 때 흥미가 생겼다. 그렇다고 아주 재미있거나 꼭 봐야 할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토요일 오전에 시작한 드라마를 점심도 거르고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젊은 남녀의 밀당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인가 했는데 볼수록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여주인공 차무희는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를 살해하는 것을 목격하고 엄마가 자신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그 모든 것을 모른척하고 살아간다. 성인이 되고 배우가 된 그녀는 촬영 중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지고 6개월 후에 깨어난다. 그 후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 안에 다른 인격이 생기고 일로 만난 통역사만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통역사를 좋아하게 되고 남자 주인공 통역사 주호진은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녀를 자꾸 밀어낸다. 둘은 계속 일로 얽히게 되고 그는 어느새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짝사랑과도 정리를 한다.
엇갈리던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만 둘이 행복할 때마다 무희의 다른 인격이 나타나고 둘은 또다시 엇갈리는 사랑을 하게 된다. 무희는 자신의 또 다른 인격도 결국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실들을 인정하고 털어낸다.
차무희는 솔직하고 엉뚱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의 비해 주호진은 차무희를 좋아하면서도 감정을 숨기고 내색하지 않는다. 초반에는 주호진의 감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이혼남과 결혼한 엄마, 그리고 부모의 이혼, 거기에 제멋대로인 이복형까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나머지 책임감은 없는 그의 가족관계를 보니 그의 마음 또한 이해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세계의 언어는 7 천 개가 아니라 우리 사람의 수만큼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전에 김창옥 선생님 강의에서도 들어본 것 같다. 결혼해서 초반에 부부가 자주 싸우는 이유는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라고. 그 말은 서로의 가정환경이 달라서 서로의 언어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통역사인 그는 일본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통역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그녀의 언어는 잘 통역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말로 학대받고 자란 그녀는 누군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다고.
누군가는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고 했고 누구는 너의 다정이 나를 살린다.라고 했는데 어릴 때 부모의 죽음으로 친척 집에서 눈치 보고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녀에게 다정은 아마 독이 되었나 보다.
드라마는 다행히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가끔 학원에서 수업할 때 아이들이 쓰는 단어를 듣고 있으면 아이들의 환경이 어떠할지 짐작이 갈 때가 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에서도 길에서 꽃 파는 소녀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언어학자 히긴스가 그녀를 6개월 정도 발음을 교정해서 사교계의 숙녀로 보이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언어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문득 나의 언어는 어떠한지, 나의 언어는 상대방에게 잘 전달이 되고 있는지, 특히 아이들과 수업할 때 내가 아는 언어로만 수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읽는다고 다 이해하는 게 아니듯이 말한다고 다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