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인이 알려 준 전시회에 다녀왔다. 처음엔 고 미술인 거 같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전시회인가 찾아보다 신윤복의 미인도란 작품을 보았는데 이게 실물로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소 충동적으로 가게 되었다.
원래 나는 그림 하고는 친하지 않다. 내가 제일 못하고 싫어하는 과목이 미술이었다. 자신 없고 잘 못 하다 보니 싫어진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중학교 때 미술 시간이었다. 교탁 위에 꽃병이랑 사과랑 놓여 있었고 우리들은 다 같이 정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옆에 서 계신 미술 선생님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시더니 ’ 너는 꽃병이 이렇게 보이니? 꽃병이 어떻게 이렇게 생겼니?‘ 하시며 굉장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그린 꽃병이 그렇게 이상한가?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도 아닌데. 그림을 잘 못 그리기는 하지만.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가뜩이나 자신 없던 미술이란 과목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었고 미술은 내 인생에서 없는 분야가 되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히 Tv에서 한 사진전에 대해 얘기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마 요한 에릭슨 사진전으로 기억하는데 요한 에릭슨은 스웨덴 출신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라고 한다. 분명 사진인데 마치 꿈꾸는 듯한 그림 같은 사진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사진전을 직접 보러 갔다. 현장에서 직접 본 사진은 더 좋았다. 아니 사진을 보고 있는 내내 행복했던 거 같다. 그 후로 나는 비슷한 사진전이 있으면 보러 다녔고 점점 전시회 범위를 넓혀 그림도 보러 다니게 되었다.
오늘 다녀온 전시회는 ’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라는 제목의 간송 미술관 전형필의 국보급 문화유산들의 전시회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마치 조선 풍속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한, 전시장을 가득 채운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전형필 선생님은 전에 내가 수업하던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어느 출판사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영어 교과서 본문에 전형필 선생님은, 물려받은 유산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나라 문화재를 찾아 사들이는 일을 평생 하시며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지켜내신 분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이 지켜내신 문화재로는 훈민정음해례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조선백자, 고려청자 등이 있다. 그리고 그는 국내 최초 사립 미술관 간송 미술관의 설립자이다.
처음 입장했을 때 만난 것은 훈민정음 네 글자였다. 한지 등이 천장에 수백 개 달려 있고 사방이 거울로 되어있어 다양한 빛으로 표현되는 한글이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최초의 창조적인 언어로 빛과 한글이 우주와 만나 하나가 되는 세계로 그려낸 콘텐츠가 압도적이었다.
다음은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관동명승첩으로 금강산과 관동지방의 절경이 사계절로 표현되어 있었다. 복도 양쪽과 천장에도 아름다운 배경이 펼쳐져 눈을 떼기 어려웠다.
얇은 비단 천을 앞으로 헤치고 나아가니 마침내 보인 것이 신윤복의 미인도다. 처음 눈앞에서 보게 된 신윤복의 미인도는 생각보다 큰 그림이었다. 조선 시대 젊은 여성을 그린 미인도는 트레머리(기녀머리)에 연미색(하얀빛을 띤 노랑) 삼회장저고리(깃, 끝동, 고름, 곁마디에 다른 색 천으로 장식을 댄)와 풍성한 옥색(옥의 색깔과 같은 흐린 초록색) 치마를 입었다.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과 작고 섬세한 이목구비, 가늘고 긴 목, 좁은 어깨 등이 당시(조선후기)의 미인상을 보여 준다. 미인도를 한참 보다 보니 조선 시대 여인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보게 된 작품 역시 신윤복의 작품이었는데 혜원전신첩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른 폭 그림으로 도원(가상의 그림 언덕 마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조선 시대 한 마을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사랑했던, 마을에서 제일가는 기생 춘홍과 서생 이난이 달밤에 골목 끝에서 만나는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림 전시 이상으로 경이로움을 느낀 미디어아트 전시는 정말 좋았다. 전시회 티켓에 재관람은 30% 할인된다고 하던데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가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