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옷 정리를 했다. 햇살이 따사하게 느껴지는 게 봄이 성큼 다가온 거 같다. 더 늦어지면 봄옷을 못 입고 바로 여름옷을 입게 되지 않을까 싶어 서둘러했다. 드라이 맡길 옷들을 골라 놓고 겨울 패딩은 세탁기로 직행하고, 한 두 해 안 입은, 버릴 옷들도 챙겨두고, 그렇게 내 옷, 남편 옷, 아들 옷까지 정리하고 나니 참 개운하다.
일을 그만두었을 때 처음엔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참 막막했다. 항상 시간에 쫓기듯 지내 왔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마치 학생 때 시험 기간이면 보고 싶은 영화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눈에 아른거리고, 왜 그렇게 잠은 쏟아지던지,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괴로웠는데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거 같고, 잠도 안 오고, 책도 눈에 안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땐 시험을 잘 못 봐서 그랬으려나.ㅎ)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생각했다. 처음엔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조차 몰라서 참 많이 고민했었다. 일단 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스페인어를 등록했다.
최근에 관심이 생긴 낭독하기도 신청해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었던 책들을 꺼내 도장 깨기 하듯 읽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 ’ 넥서스‘를 시작해서 ’ 사피엔스‘, 네루의 ’ 세계사편력’, 칼 세이건 ‘코스모스’까지
그저 사둔 책이니 읽어봐야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읽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여유도 생겨서일까?
요즘의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와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에 대해 배우고, 농업이 시작되고 계급사회가 등장하고 종교가 생기는 과정을 이해해 보고, 기원전 고대문명부터 현재까지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고,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과거 인쇄술의 발명에 해당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고, 우주의 빅뱅 이후 형성된 항성, 행성과 우리 은하수 은하 등 우주 천체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다.
읽은 책들은 기억하기 위해 감상문을 써두었다. 그러다 가끔 일상생활에 에피소드도 쓰고 그렇게 한 주에 두 편씩 쓰다 보니, 이제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남편이 거의 도맡아 했던 청소도 하고, 아이가 고3이 될 때까지 저녁을 못 챙겼던 미안함에 밥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짬짬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다 보니, 하루가 참 짧다.
다음 달부터는 우리 동네 주민기자단 일도 해보기로 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오랜만에 설레어온다.
막막하기만 했던 하루가 또다시 숨 가쁘게 지나가고,
이제 조금씩 내가 원했던 삶과 가까워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