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전 이맘때 이 책을 읽었었다. 그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책을 읽었었다. 근데 마지막에 주인공의 선택에 나는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배신감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지만)
아마 그때,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주인공이 미웠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주인공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주인공 그녀의 이름은 안진진이다. 원래 참 진 자의 외자 이름으로 지었는데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면서 진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즉흥적이고 지독한 술꾼이고 건달이며 성격 파탄자.
그럼에도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있는,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모와 일란성쌍둥이이다. 자랄 때 외모나 성향, 성적까지 똑같아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둘을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혼도 같은 날 같이 하지만 결혼 이후 둘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을 벌어야 했고, 말 안 듣는 자식들을 쫓아다니며 늘 삶에 쫓기듯 사는 엄마와 달리, 이모는 부유한 가정에 자상한 남편, 공부 잘하는 아이들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삶을 산다.
그래서 진진이는 어려서부터 이모를 부러워하며 엄마보다 이모를 더 좋아한다.
그런 그녀에게 두 남자가 있다.
김장우는 야생화 사진작가이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여자를 위해 뭘 계획할 줄 모르는 순수한 남자이다.
나영규는 유복한 가정에, 좋은 직장에, 매사를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밝은 기운의 남자다.
진진이는 나영규의 조건에 끌리지만 그의 빈틈없는 계획성에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끼고, 그와는 사랑이 아닌, 뭐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김장우와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끌리고, 자신과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어느새 사랑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김장우와 결혼을 결심하고 나영규에게 이별을 고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모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긴다.
이모는 어려서도 평탄했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을 그만 끝내고 싶다고, 평생을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 엄마의 삶이 부러웠다는 유서를 진진이에게 남기고 자살한다.
예기치 못한 이모의 죽음으로 진진이는 혼란스럽고,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엄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는 얘기에 마침내 본인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을 나영규에게서 찾기로.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막내 이모 생각을 많이 했다. 막내 이모랑 우리 엄마는 칠 형제들 중 유독 친했었고 이모는 내가 어린 시절에 보기에도 엄마보다 예쁘고 세련돼 보였다. 그리고 이모부는 그 당시에도 훤칠한 키에 선이 굵은 미남형으로 늘 호탕하게 웃으셨다. 나는 이모와 이모부에게서 우리 엄마, 아빠에게는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진진이처럼 이모를 많이 좋아했었다.
하지만 내가 몇 살 때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모는 어느 날 집을 나왔고 이모부는 몇 년간 이모를 기다리다가 결국 다른 분과 재혼하셨다.
지금 이모는 혼자 계신다. 나는 이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이모도 진진이 이모처럼 너무 평탄한 삶이 지루해서 못 견뎠을까? 본인이 너무 불행하다고 느꼈을까?
그래서 지금은 행복할까?
진진이는 결혼은 열심히 생각해서 가능한 한 견디기 쉬운 징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영규와의 계획되고 지루한 삶이, 무덤 속 같은 평온함이 좀 더 견디기 쉬운 징역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삶의 어떤 교훈도 내가 체험해 보지 못하고는 알 수가 없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저마다의 모순을 가지고.